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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서울 워커힐호텔은 ‘판문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이 이곳에서 묵으면서 남측 인사들과 잇달아 회동한 것이다. 26일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27일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김영철 부위원장과 북핵 및 남북관계 개선문제를 논의했다.

워커힐호텔은 북한과 인연이 깊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경호에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남한을 방문한 북한 인사들의 숙소로 자주 사용돼왔다. 1990년대 초의 남북총리회담과 2000년대 초의 남북장관급회담, 1985·2000년의 이산가족상봉 등 수많은 남북행사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는 북측 인사들이 이곳을 찾아 무희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캉캉춤을 관람하는 일정도 즐겼다(홍석률 <분단의 히스토리>). 체제경쟁 차원에서 북한보다 우월한 ‘자유’를 맛보게 해주겠다며 북한 대표단을 고급 요정과 고고클럽으로 끌고다니던 시대였다.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처음에는 냉혈적이던 그들이 시시각각 녹아나서 떠날 때는 여심에 도취되는 등 매우 재미를 보고 갔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보수진영으로부터 ‘천안함 주범’으로 공격당해 운신의 제약을 받는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 호텔의 애스톤하우스는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이 추진했던 남북 정상회담을 대비해 지은 VIP맨션을 개조한 것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됐을 경우 김일성 주석 등의 숙소로 사용하려고 만들었으나 회담이 무산되면서 영빈관으로 바뀌었다.

워커힐호텔은 6·25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고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한 초대 미8군사령관인 ‘불도그’ 월턴 워커 장군의 이름을 땄다. 주한미군의 휴양시설로 1963년 개관됐다가 1973년 선경그룹(현 SK)이 인수했다. 보수진영은 이런 역사를 들어 “천안함 사건 주범에게 워커힐호텔을 숙소로 제공하다니 워커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군사정권이 이곳에서 북 고위층을 ‘여심에 도취되게’ 할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는지 묻고 싶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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