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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멕시코 올림픽 남자육상 200m 경기 시상식. 미국의 토미 스미스(1위)와 존 카를로스(3위)가 검은색 스카프를 두른 채 시상대에 올랐다.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두 선수는 성조기를 외면한 채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올렸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검은 장갑 시위’ 말고도 스포츠가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가 된 사건은 많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에드워드 7세에 대한 미국 팀의 경례 거부, 1948년 런던 올림픽 경기에서 독일·일본팀 축출, 미국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거부와 소련의 1984년 LA 올림픽 보복 보이콧….

‘핑퐁외교’는 스포츠가 국가 간 관계개선을 위해 나서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대장정 등 고난의 세월을 보낸 홍군은 탁구로 지친 심신을 단련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혁명 주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오는 펜홀더 그립을 쓰다가 셰이크핸드 그립으로 바꿀 정도로 탁구 솜씨가 능숙했다. 저우는 탁구에 빠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탁구를 선택한 것은 적중했다. 그 결과 중국은 ‘죽의 장막’을 걷고 국제사회로 나왔다.

흔히 스포츠는 정치를 배제하고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스포츠는 늘 정치의 연장이었다. 국가 지도자들은 흔히 스포츠라는 비정치적 방식을 통해 정치적 해결을 추구하려 한다. 국가 간 스포츠가 국가의 정치적 의지가 작용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동·서독과 남북한도 체육교류를 통해 민족의 화합과 갈등 완화를 모색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NBC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북한도 도발을 멈춘다면 올림픽 안전 개최뿐 아니라 북·미와 남북 사이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해결에 평창 올림픽을 적극 활용할 뜻을 밝힌 것이다. 스포츠의 탈정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의 의도가 성공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조성을 위해 무슨 대책이든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평화와 올림픽은 궁합도 맞는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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