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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가 놀고 있을 때 그녀에게 반한 제우스가 황소로 변장하여 나타났다. 이 황소에 관심이 끌려 에우로페가 그의 등에 오르자 제우스는 바다 건너 크레타섬으로 날아가 황소를 좋아한 그녀를 위해 하늘에 황소상을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황소별자리다. 이 공주의 이름 에우로페(Europe)는 영어의 유럽(Europe), 프랑스어의 외로프(Europe), 독일어의 오이로파(Europa), 러시아어 예브로파(Европа) 등 구라파의 다양한 명칭이 되었다. 이렇게 흩어진 자신의 이름을 빌린 국가들을 에우로페는 하나로 모으고 싶었을까. 오늘날 대부분의 에우로페 국가들은 정체성은 달라도 유럽공동체로 통합되어 거대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단군의 단일자손이면서도 70년을 넘게 적대시하며 갈라져 있는 한반도는 날이 갈수록 초라해 보인다. 통일의 열기도 갈수록 식어져 독일이 지불한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에서 남북의 통일에 부정적인 층도 있다고 한다. 이는 통일비용만 생각했지 분단비용은 염두에 두지 않은 근시안적인 사고로 분단에는 돈뿐 아니라 심리적인 피해까지 따르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통일에 제일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층으로 정치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일부 지도자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정치꾼들은 남북의 분단이라는 민족의 수치도 모자라 영호남 등 남한까지 갈라 이중분단을 저질러 왔다.

오직 권력만이 관심거리인 이들은 힘든 현실에 대처하기보다 자신의 지역만을 챙기고 상대 지역에 반감을 일으켜 쉽게 당선되면서 한결같이 애향, 애교, 애국 등을 내세운다. 이들이 전략적인 애교를 부르짖을 때 동창회조차 없는 독일 대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상승하여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무려 4000종류의 맥주에 전 세계 맥주공장의 3분의 1을 지닌 독일의 애향은 자기 지역의 맥주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아름다운 지역감정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지역감정은 대결의 구도를 넘어 적대감으로 악화되어 미국의 인종 문제나 중동의 종교분쟁같이 국가의 재난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이념이 같은 남한을 분단시키면서 이념이 다른 민족과 남북통일하자는 외침은 훈장을 주렁주렁 차고 있는 이완용을 연상케 한다.

서양이 근대 300여년에 걸쳐 판단과 감정을 분리하는 훈련을 받을 때 당파싸움에 익숙해진 탓인지 우리는 진보나 보수, 좌우익, 영호남 등으로 갈라지고, 독재정권에 저항만 해도 좌익이나 빨갱이로 낙인찍는 반공이 득세하였다. 하지만 과거 강력한 반공국가로 우리의 최대 우방이었던 대만과 단절하고 한국전쟁의 주적이었던 공산중국과 수교할 때 극단반공주의자들은 왜 그리도 침묵했는지. 국익을 위해 공산권 중국은 받아들이면서 같은 민족인 북한에 약간의 편향만 보여도 좌익이나 빨갱이로 규탄하는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으로 동질성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만을 챙겨 민족의 정서를 오염시킨 정치에는 공통점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를 벗어나 학계, 문학, 예술, 체육 등의 공동체가 양국의 변천에 내포된 공통점을 찾아 통일을 추구해야 하겠다. 유럽통합의 동기도 원래 정치가 아니었다. 1916년 당대 최고의 문학가 로맹 롤랑은 머지않아 민족의 갈등이 끝나고 유럽의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예언했는데 후에 유럽은 정말로 통합되었다.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철옹성과 같은 반목의 벽을 쌓던 미국과 북한을 가장 가깝게 했던 사건도 정치가 아니고 2008년 2월27일 평양에서 연주된 로린 마젤이 지휘한 뉴욕필하모니였다. 이때 북한의 청중들은 성조기를 앞세운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맺게 된 동기도 나고야세계탁구경기(1971)였고, 우리도 시드니 올림픽(2000) 등에서 남북단일팀으로 통일의 정서에 접근하기도 했다. 북한의 스포츠팀과 여러 단체가 참가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안진태 |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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