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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치고 애견인 아닌 경우가 드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백구와 황구, 스피츠, 치와와 등 다양한 품종의 반려견을 키웠다. 당시 ‘큰영애’로 불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중 스피츠 ‘방울이’와 진돗개 ‘진도’를 좋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키우던 진돗개 2마리는 재산압류 때 경매에 부쳐져 40만원에 팔렸다. 다행히 개를 산 낙찰자가 되돌려줬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반려견 ‘누리’의 사연은 슬프고 애잔하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자택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잊지 않고 소개하던 반려견은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집을 떠나 실종돼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주인이 심장마비로 죽은 줄도 모르고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10년을 전철 역 앞에서 기다리다 숨을 거둔 개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하찌’를 연상케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함께 선글라스를 끼며 각별한 애정을 쏟은 반려견 ‘청돌이’의 사진을 퇴임 후에도 자주 공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키우는 진돗개 '평화', '통일', '금강', '백두', '한라'

대통령들이 반려견을 키우는 이유는 일반 애견가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반려견과의 교감은 사람에게 심리적인 위안과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경쟁·비교 사회에 지친 현대인을 보듬는 데 반려견만 한 존재도 없다. 돈과 권력, 사회적 지위, 나이 등의 편견 없이 한결같이 주인을 따르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통령들에게 반려견은 인간적 면모를 홍보하는 정치적 수단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반려견을 정치에 자주 활용했다. 대통령 취임 때 자택 인근 주민에게서 선물받은 진돗개 한 쌍이 새끼 5마리를 낳자 청와대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이름을 공모했다. 새해 업무보고에서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을 강조했고 비선 실세 의혹 당시에는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고 말했다.

이랬던 박 대통령이 파면당한 뒤 진돗개들을 청와대에 둔 채 자택으로 돌아가 유기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분양할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동물보호단체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자칫 박 전 대통령의 법 위반 항목이 하나 더 늘어 14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배신을 싫어한다는 대통령이 배신을 모르는 반려견을 배신하는 그 지독한 모순과 이기심이 무섭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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