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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지폐와 인물

opinionX 2019. 4. 11. 11:44

미국 지폐 속 인물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비롯해 대부분 정치인이다. 유일한 비정치인은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2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해밀턴은 미국 경제의 설계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관세를 통해 국내시장을 보호하고 국내 기업을 키우는 정책을 택했다. 그 결과 미국은 농업국가가 아니라 제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길을 독일과 일본에 이어 한국, 그리고 중국이 뒤따르고 있다. 해밀턴은 한때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이 20달러 새 지폐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면서 ‘퇴출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밀려난 건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었다.

영국의 파운드화 지폐 앞면에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지폐 뒷면에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이 올라 있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 소설가 제인 오스틴 등 대중에게 친밀하거나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이다. 중국(마오쩌둥)이나 베트남(호찌민), 인도(간디) 등에서는 국가 건립 영웅이, 군주국에서는 현직 군주의 초상을 넣었다. 각 나라의 현실과 시대정신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새 일왕의 연호를 정하면서 지폐도 새로 발행하기로 했다. 1만엔 지폐에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시부사와 에이치의 초상을 싣기로 했다. 그리고 5000엔 지폐엔 일본 최초의 여자 유학생인 쓰다 우메코, 1000엔 지폐엔 ‘일본 근대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새 모델이라고 한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일제강점기에 제일은행권 발행과 경인선 철도 부설 등 한국 침탈에 앞장섰던 인사다. 그런 사람의 초상의 지폐 등장은 우리로선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지폐는 나라의 얼굴이다. 한국의 지폐에는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이, 이황 등의 초상이 실려 있다. 시기적으로 조선시대에 한정됐고, 넓게 보면 학자들만 있다. 다양성이 부족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했다고 하기 힘들다. 일본은 대놓고 한반도 수탈의 주인공을 새 지폐의 인물로 선택했다. 임시정부 100돌을 맞아 독립정신과 진취성을 갖춘 미래지향적인 인물을 고민해볼 때가 됐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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