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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차이니스 타이베이

opinionX 2018. 11. 26. 11:16

1997년 영국 런던에서 대만 여성 애니를 만났다. 어학연수차 온 애니는 밝고 활달하고 영어도 잘했다. 그는 영국을 벗어나 유럽 대륙을 여행하고 싶어했다. 쉽지 않았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던 한국인과 달리 별도 비자가 필요했다. 어느 날 용기 내 프랑스 파리 여행 계획을 세웠다. 몇 해 전 고속열차 유로스타가 개통된 터라, 런던 도심에서 3시간 정도면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행하기로 한 한국인들은 비자 인터뷰를 앞두고 걱정하는 애니를 안심시켰다. “영국 체류 자격이 확실하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열차표도 갖고 있으니 (비자 발급을) 거절당할 리 없어.” 그들이 틀렸다. 애니는 파리에 가지 못했다.

지난 24일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대만(Taiwan)’으로 참가하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안건이 부결됐다. 기존 명칭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에서 ‘차이니스’를 뗄 것이냐는 물음에 ‘아니요’ 한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격랑으로 몰고 갈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차이니스 타이베이는 중국이 강조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반영한 표현이다. 대만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캐나다 정부가 공식 국호인 ‘중화민국’ 사용을 불허하자 보이콧을 선언했다. 1981년부터는 차이니스 타이베이란 명칭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도 이를 사용했다. 하지만 대만 시민 사이에서 ‘중국인’보다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되면서 올림픽 참가 시 대만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국민투표 안건으로 채택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명칭 변경을 강행할 경우 올림픽 출전이 어려울 거라고 경고했다.

‘탈중국화’를 외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 이후 중국은 대만을 향한 압박을 강화해왔다. 대만의 외교적 고립은 심화됐다. 엘살바도르·파나마 등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대만과 단교했다. 현재 수교국은 17개국뿐이다.

국민투표 결과를 보며 애니를 떠올렸다. 그는 언젠가 파리에 다녀왔을까. 아니면 도버해협을 건너보지 못한 채 대만으로 돌아갔을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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