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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비는데 할 일이 딱히 생각나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웹툰을 찾아본다. 2시간 동안 약 70회의 웹툰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한 회 분량의 만화를 그리는 데에 작가는 몇 시간을 공들일까. 몇십 시간에 걸쳐 완성해도 독자가 정독하는 데에는 2분 남짓이 걸릴 뿐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무심히 스크롤을 내리는 독자를 보며 작가가 느끼는 보람이란 무엇인 걸까. 한때 만화가를 꿈꿨던 내가 감히 예상하건대 재미있었다거나 다음회가 기대된다는 댓글이 달렸을 때, 높은 평점을 받을 때, 본인이 의도한 대로 작품이 흘러갈 때, 무엇보다 ‘나의 작품’을 무사히 완결지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레진코믹스의 제안으로 2013년 <나의 보람>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한 A작가는 레진코믹스의 대표 측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았다. 작품의 장르와 캐릭터 이름을 제안한 몫으로 글작가에 레진을 표기하고 수입의 30%를 배당해달라는 것이었다. 레진이 글작가로서 책임진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완성한 콘티를 보고 ‘좋다’ ‘임팩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평가가 전부였을 뿐이다. 이후 연출과 대사, 작화는 전부 A작가의 몫이었다.

글작가로서의 기여도가 없음에도 3할의 수입을 가져가는 레진에 항의하면 ‘A작가님이 어리셔서 업계 관행을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니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법정대리인 없이 난생처음 계약서를 받아든 미성년자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이 무엇이며 이런 부당함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A작가의 요구를 묵살한 레진은 글작가에서 물러나기는커녕 원작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보람’은 <나의 보람>이라는 데뷔작을 빼앗김과 동시에 사라졌다.

레진코믹스는 플랫폼 없이는 연재가 불가능한 점을 이용해 업계의 우월적 지위를 행사해왔다. 지난 7월에는 창작 환경 개선을 위해 회사 경비를 요청한 작가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프로모션에서 임의로 배제해 수입에 고의적 영향을 미친 사실도 드러났다.

프리랜서 노동자는 회사에 직접 고용되지 않아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근로기준법에서도 소외되어 왔다. 계약서는 창작자의 창작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지지 창작자의 권리와 창작 환경 보호를 위해 작성되지는 않는다.

창작자를 생활예술인으로 보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예술인복지법은 ‘복지 및 창작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실시’하고 ‘필요의 경우 수시 조사를 실시할 수도 있다’고 명시한다. 이번 사례를 기점으로 계약서와 창작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사례를 유형화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예방책과 법적 안전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복지법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해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창작지망생과 데뷔를 앞둔 아마추어 작가의 권리 보장을 위해 예술인 증명의 문턱을 낮추는 일의 병행은 필수다.

무엇보다 레진코믹스와 작가 사이의 불공정 계약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요구된다. 이는 프리랜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문화산업계 지망생의 공정한 시작을 담보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작가에게 돌아가야 할 수입을 플랫폼이 뺏어 살아남는 제로섬게임을 ‘업계 관행’이라 인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창작자의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가로챌 자격이 없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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