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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세상을 뜬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김어준·진중권·홍세화씨 등과의 대화를 엮어 2010년에 나온 책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의 표지에는 첼로를 켜는 고인의 사진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용접공 생활까지 하며 노동운동에 매진해온 고인의 삶과 첼로는 왠지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KBS의 한 프로그램에서 고인이 어린 시절 첼로를 배웠다는 말에 함께 출연한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선 이 의원이 한 말이 “죄송하다. 너무 안 어울려서”다.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한 시민이 쓴 편지가 놓여있다. 권도현 기자

고인은 가난 속에서도 문화·예술을 중시했던 부모의 뜻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첼로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경기고 재학 시절에는 개교기념일에 독주를 했고, 이화여고에서 초청공연도 했다. 차가운 이성에 매몰되지 않고 따뜻한 감성을 보여준 고인의 삶과 말들이 이런 예술적 감수성에서 나왔으리라.

고인은 평소 “첼로는 인간의 음성에 가장 가까운 소리”라며 첼로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곤 했다. 현악기 중 저음역을 맡고 있는 첼로는 따뜻하고 폭넓은 음색으로 사랑을 받는다. 첼로는 수십 개의 악기가 모여 조화로운 소리를 빚어내는 관현악을 떠받쳐주는 악기다. 진보운동가이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와 관용의 태도를 중시해 보수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던 고인의 삶은 클래식의 앙상블을 완성시켜주는 첼로를 연상시킨다. ‘빨간색이되 우아한 빨간색이고 싶다’는 고인의 소망(정운영 작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중)도 우아한 모습의 첼로 연주자와 오버랩된다.

방송 등 많은 곳에서 연주 요청이 있었지만 그의 실제 연주 모습이 방송을 탄 것은 2005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연주한 곡이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다.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를 토대로 한 모음곡 중 하나인 이 음악은 주인공 귄트가 인생 역정의 끝에서 사랑하는 여인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을 감는 장면을 그렸다. 고인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이 애수 넘치는 이 곡을 닮았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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