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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국회에서는 ‘특수하지 않은 특수활동비, 폐지인가 개혁인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참여연대가 정보공개소송을 통해 공개받은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에 마련된 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에서 웃지 못할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특수활동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국회의원에게 “해외출장갈 때 의장에게서 받은 금일봉이 특수활동비였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 균등인센티브 명목으로 받은 것이 알고 보니 특수활동비였다”며 다른 의원들이 알려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돈을 받으면서 무슨 명목으로 받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국회의 예산 씀씀이는 불투명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하태경 의원은 “특수활동비를 잘못 쓴 국회의원들은 감옥에 가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드러난 자료로 보면,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기획재정부 지침에 명시되어 있는 특수활동비는 엉뚱하게 사용됐다.

300명 국회의원들에게 ‘입법 및 정책개발비 균등인센티브’라는 명목으로 1년에 600만원씩을 나눠줬고, 상임위원장들에게 월 600만원씩, 정당의 원내대표들에게 월 수천만원씩을 나눠줬다. 이것은 특수활동비의 용도에 맞는 예산집행이 아니다. 대법원은 2013년에 ‘특수활동비를 정하여진 목적 또는 용도와 달리 사용’한 것에 대해 업무상 횡령이라고 판결내린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국회 사무처와 300명 국회의원 전체가 업무상 횡령의 혐의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국회는 지금도 ‘특수활동비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자료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소송을 제기해서 판결을 받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한 특수활동비 지출정보는 공개했지만, 2014년 이후 자료에 대한 공개는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고 불법행위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가 사법부를 무시하고 국가 법질서를 훼손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회는 국회가 아니라 세금도둑의 소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회가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예산항목들은 특수활동비만이 아니다. 필자는 지금 국회를 상대로 3건의 정보공개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특수활동비 81억원(2017년 기준), 업무추진비 88억원, 예비금 13억원, 입법 및 정책개발비 86억원, 특정업무경비 27억원, 정책자료집 발간 및 발송비 46억원, 그리고 액수를 알 수 없는 국회의장단 및 정보위원회 위원 해외출장비까지…. 일부 중복되거나 액수를 알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1년에 323억원이 훌쩍 넘는 예산이다.

이 예산들을 어디에 썼는지 공개하라는 것인데, 국회는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은 연이어 공개판결을 내리고 있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증빙서류에 대해서는 7월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공개판결을 내렸다. 7월19일 서울행정법원은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예비금, 의장단 및 정보위원회 해외출장비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나머지 1건의 소송에 대해서도 8월30일 1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이처럼 법원의 판결은 ‘정보공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계속 항소와 상고를 하면서 시간끌기만 하고 있다. 그에 들어가는 변호사비용은 모두 국민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런 국회를 방치하고, 무슨 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회가 이렇게 돈을 쓰는데, 국회가 어떻게 행정부를 감시하고 중앙부처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낭비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국회의원들이 행정부의 예산낭비를 지적하면, 지적받은 공무원들은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국회개혁은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다. 전국에 만연해 있는 예산낭비를 없애고 그 돈을 국민들의 삶을 위해 쓰게 만들려면 국회부터 개혁해야 한다. 곳곳에 만연해 있는 특권과 갑질을 없애고, 평등이 실현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려고 해도 국회부터 개혁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국회에서 사용하는 예산부터 투명하게 공개시키고, 그동안 잘못 쓴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공공성이 회복될 수 있다. 또한 제도개혁도 해야 한다. 특수활동비 같은 예산을 폐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립된 기구가 국회의원들의 연봉과 각종 예산지원, 보좌진 규모 등을 결정하게 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도도 개혁해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과 개혁성으로 경쟁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특권을 뿌리뽑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국회의원들이 특권 없이 일하는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의 공통점은 각 정당의 득표율대로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선거제도를 개혁하면, 부패한 국회의원들을 둔 정당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그런 정당에는 정당투표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권 없이 일하는 국회를 만들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는 분노도 한계점에 도달했다. 지금처럼 국회의원이 해야 할 본연의 역할에는 관심이 없고, 국회의원으로 누릴 특권만 좇는 부나방들이 의사당을 채우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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