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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관공서에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고지서를 낼 때 이용하는 독특한 장치가 있다. 속이 빈 관으로 연결된 ‘에어슈터(기송관)’가 그것이다. 안에 든 운반용 통에 서류 같은 걸 넣은 뒤 공기압력을 이용해 재빨리 주고받는 식이다. 혁신기업 테슬라·스페이스X의 창업자 일런 머스크가 에어슈터를 보고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개발에 나선 것이 ‘하이퍼루프’다. 거대한 튜브를 만든 뒤 그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밀어냄으로써 초고속으로 객차를 움직이겠다는 구상이다.
2014년 영화 <킹스맨>에는 비밀요원이 이동할 때 하이퍼루프와 비슷한 모습이 등장한다. 앞서 1987년 <007 리빙 데이라이트> 편에서 제임스 본드가 소련 장군을 대형 가스관 내 캡슐에 태워 강한 압력으로 순식간에 서방으로 탈출시킨 것도 원초적인 하이퍼루프에 가깝다.
이론상 하이퍼루프는 30t 객차를 1분 안에 시속 1200㎞ 이상으로 속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시속 900㎞대인 여객기보다 빠르다. 서울~부산도 약 20분이면 가능하다니, 꿈의 교통수단이라고 할 만하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내부는 거의 진공상태로 만들고, 객차는 자기력으로 공중에 살짝 띄운다. 추락 위험이 없고, 소음도 적으며, 날씨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11일 하이퍼튜브 기술을 적용해 시속 1019㎞까지 가속하는 데 성공했다. 열차의 17분의 1 크기로 줄인 시험장치에서 구현한 것이지만, 처음으로 시속 1000㎞를 넘어섰다니 놀랍다. 미국 기업 버진 하이퍼루프는 지난 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최초로 유인 주행시험에 성공했다. 사람 2명을 태우고 15초에 500m 실험 터널을 주파했는데, 최대 시속 172㎞로 달렸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하이퍼루프 경쟁이 뜨거운 만큼 화물 운송에도 하이퍼루프가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배송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은 물론 물류창고도 줄일 수 있다.
속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미 필요 이상으로 빨리 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마하 2.2를 자랑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단 한 번의 추락 참사로 그 빛이 바랬다. 코로나19를 전 세계에 급속히 퍼뜨린 것은 고속 교통수단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 아닌가.
전병역 논설위원 junby@kyunghyang.com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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