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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탕평채

opinionX 2018. 11. 7. 10:30

음식은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로 빈번히 사용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방문한 영국왕 조지 6세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서민 음식인 핫도그와 맥주를 대접했다. 도도한 영국 왕실의 이미지를 미국사람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기 위해서다. 당시 미국인들은 전쟁에 나서는 것에 반대했다. 이 같은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영국을 지원하는, 참전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핫도그 외교’는 성공적인 식사외교로 회자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 미 대선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치킨을 먹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내보냈다. 그런데 손으로 뜯어먹는 서민들과 달리 은색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모습이어서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아냥을 샀다. 또 그는 히스패닉 표심을 공략하려고 멕시코 대중 음식 타코 볼을 먹는 사진을 “난 히스패닉을 사랑해요”라는 말과 함께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정책에서는 ‘멕시코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등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해 오히려 반감만 키웠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의 회의 뒤 오찬에서 메뉴로 탕평채가 나왔다. 청와대는 “치우침이 없는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탕평은 <서경>에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에서 유래한다.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데친 미나리, 구운 김 등을 섞어 만든 청포묵 무침이다. 이들 음식의 색깔은 조선시대 권력을 잡았던 당파로 알려진 서인, 남인, 동인, 북인을 대표하는 색이라고 한다. 영조는 탕평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음식을 내놓았다고 한다. 당파 간의 갈등 해소를 기원한 것이다.

정조는 선왕인 영조의 탕평을 이어받았다. 침전에 ‘탕탕평평실’이라고 쓰인 편액을 달았을 정도다. 그러나 정조는 “선왕조 만년까지만 해도 바른말과 격한 논쟁들을 많이 했다. 요즈음에는 감언(敢言)하는 자가 없으니 아마 과인이 과실을 지적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그러는 것인가?”라며 한탄했다. 아첨꾼은 있으나 바른말 하는 신하가 없음을 아쉬워한 것 같다. 탕평은 백화제방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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