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펜스 룰

opinionX 2018. 3. 9. 10:15

“내 차에는 각시만 태운다.” ‘미투’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와중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렇게 고백했다. 지난 대선에서 ‘돼지발정제’로 곤욕을 치른 그로서는 불똥이 튀지 않도록 사전 방어막을 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부인과 사별한 후 가사도우미를 남성으로 교체한 것과 비슷한 심리라고 하겠다. 성폭력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기 위해 여성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펜스 룰’이 사회현상으로 번질 태세다.

회식이나 출장에서 여성들을 배제하고, 여직원을 대면하지 않고 사내 메신저로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자기들만 피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일부 남성의 이기심의 발로일 뿐이다. 이렇게 하면 성폭력 피해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여성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공식·비공식 교류와 접촉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여성들은 제대로 사회경력을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펜스 룰은 여성을 유교의 덫에 가둔 조선시대로 돌아가 남성 위주 사회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본디 성폭력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물리력과 권력으로 여성의 성을 소유할 수 있다는 남성 위주 성문화의 소산이다.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성차별을 강화한다면 이는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애초 펜스 룰이란 말은 여성을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인터뷰 발언에서 나왔지만, 이는 언행을 신중히 하겠다는 의도였다. 같은 인터뷰에서 “남성과의 술자리에서도 몸가짐을 조심하겠다”고 한 것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펜스 룰의 원전으로 알려진 ‘빌리 그레이엄 룰’도 그레이엄 목사가 물적, 성적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자기수양적 규칙이었다. 그랬던 것이 태평양을 넘어오면서 엉뚱한 의미로 변질된 것이다.

미투 운동은 만연한 성폭력을 퇴치하고 강고한 성차별 문화를 허물기 위한 혁명으로 가고 있다. 성평등 사회,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면 오염된 언어도 바꾸는 게 맞다. ‘펜스 룰’ 대신 ‘서지현 룰’로 쓰면 어떨까.

<조호연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