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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과 사판, 전통적으로 절집에서 대중의 소임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세간에서 쓰는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판은 참선하고 경전을 연구하고 염불 수행에 전념한다. 부처님의 법을 전하고 재정을 관리하며 건물을 보수하는 일은 사판의 몫이다. 주어진 일의 특성상 이판승에 비해 사판승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접촉이 많다. 몇 해 전, 어느 사찰에서 사판 소임을 맡았을 때였다. 읍에 사는 신도들이 일종의 민원 비슷한 사항을 가지고 찾아왔다. 절에서 건물을 신축하고 보수하는 데 이왕이면 불자가 운영하는 사업체를 이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다소 굳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다른 종교인들은 서로의 가게를 이용하면서 단합이 잘 되는데 불교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왜 우리 절은 교회 다니는 사람의 가게에 일을 주느냐고 했다. 이럴 때는 맑은 차를 건네며 시 한 수 보시하는 것이 감정의 결을 다스리는 데 더없이 좋다.

‘매화가 핀다고/ 연꽃이 곱다고/ 산국처럼 물들고 싶다고/ 눈꽃이 못내 그리웁다고/ 솔숲 맑은 바람 다관에 우려내면/ 찻잔에 어느새/ 푸른 하늘 담기네’(박남준 ‘차 한 잔’)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읊조리는 시 낭송에 신도들은 긴장을 풀고 웃었다. 그 틈을 타 이런저런 말을 보탰는데 내용은 이랬다. “만약 불자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공사를 부실하게 한다면 그래도 불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용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가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지금, 진실과 사랑으로 화목하게 지내야 할 종교마저 집단이기주의로 편을 갈라야 할까요? 무엇보다 일하는 데에 굳이 종교를 따져야 할까요?” 고맙게도 그분들은 나의 간곡한 뜻을 이해하고 돌아갔다. 순전히 맑은 차와 시, 덕분이다.

그날의 일은 이기적 욕망이 개인의 소소한 일상에까지 스며 있음을 실감케 했다. 지연과 학연, 혈연의 고질적인 병폐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더욱 퇴행시키고 있다. 지연, 학연과 함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집단적 단합과 배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분야가 바로 ‘종교연’이다. 누구보다 공정하고 평등해야 할 종교인들마저 집단적 이기주의를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조성하고 있지만, 신성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종교의 집단적 담합에는 ‘적용의 오류’가 내재한다. 모든 영역에서 종교의 잣대로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손안식 상임위원장_경향DB

예를 들어 보자. 불교계에 종교평화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종교 편향을 방지하고 이웃 종교들이 공동선을 구현하자는 취지로 만든 기구다. 이곳에 숱한 종교 편향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특히 초·중등 교육현장에서 불교를 신앙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교사가 식사 때마다 자신이 믿는 종교적 기도를 강요하고, 불교도인 학생을 은근히 따돌리고 망신을 주기도 한다. 이를 알게 된 부모들이 학교에 항의하지만 종교가 달라서 일어나는 작은 갈등쯤으로 치부해버린다. 견디다 못한 부모들은 전학을 위해 이사하기도 한다. 편향된 종교적 신심과 영역 적용의 오류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자신의 종교를 학생에게 강요한 교사는 종교적 갈등을 유발하기 전에, 교육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인종과 성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신념을 침해받지 않아야 할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식사 때 특정 종교의 기도를 강요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아동교육법에 규정되어 있다. 정서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또 불자 연예인들은 불교 신자임을 표방하면 방송출연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소연한다. 군대 진급에서도 암묵적 단합이 있어 진급을 위해 개종하기도 한다. 또 일부 지자체장은 자신이 믿는 종교를 내세워 지역을 성역화하겠다거나, 정치인들이 특정 종교의 표를 사기 위해 이런저런 거래가 오간다. 불교계의 경우 각 정당이 대선을 앞두고 10대 공약 같은 것을 건네받는데, 다른 종교도 이면에서 비슷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 대가로 성직자는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발언을 한다. 모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이기적 욕망의 담합이며 영역 적용의 무지이고 오류다.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판단의 잣대를 잘못 적용하는 오류가 넘쳐나고 있다. 적용의 오류가 일어나는 원인은 종교로 모든 것을 환원하려는 무지와 더불어 권력과 물질의 확장에 있다. <화엄경>에 ‘이사무애(理事無碍)’라는 말이 있다. 상식과 진리에 기초해야 삶의 현장이 바로 선다는 뜻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라는 말도 있다. 저마다의 영역을 지키고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협력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경지를 말한다. 간절히 원하건대 종교, 교육, 정치의 모든 영역이 사사무애하면 참 좋겠다.

거듭 원하건대, 4월 총선에서 모든 국민이 지연과 학연, 종교연을 떠나 오직 민주와 인권, 자유와 복지라는 가치에서 투표하기를!


법인 스님 | 대흥사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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