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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연전연패하던 저녁, 하필 그날 회갑을 맞이한 남자는 사람이 어째 사람도 아닌 것에 질 수 있느냐면서 꺼이꺼이 길게도 울었다. 하마터면 같이 울 뻔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 같지도 않은 물건들에 당하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라야지.

우리의 비원인 민족통일을 향해 국내외로 민주세력을 키우고 규합해 착실하게 전진해야 할 이 마당에 일인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은 채 총파국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지금 우리는 독재정치의 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사법부는 사실상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으며 의회 또한 허물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국가안보라는 구실 아래 양심의 자유는 날로 위축돼 가고 언론의 자유는 압살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제 국제사회에서 초라한 고아 신세나 다름없다. 경제는 붕괴 직전이다. 농촌을 잿더미로 만들고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쉬운 해고를 바탕으로 산업을 세우려고 한 것은 애초부터 망상이었다. 어찌해야 하겠는가?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요 며칠 사이에 나온 어느 사설처럼 보였는지 모르지만 1976년 3월1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발표했던 ‘민주구국선언문’의 일부다. 두어 곳만 살짝 바꿔보았다. 당시 문공부 장관은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비합법적 활동”이라 했고, 검찰은 “정부를 전복하려는 선동사건”이라면서 긴급조치 제9호의 칼을 빼들었다. 지금 같아서는 너무나 지당하고 점잖은 충고 몇 마디였을 뿐인데 그토록 쉽게 자지러지는 독재자였다니 싱겁고 한심하다. 그런 세월이 그 잘난 유신체제였다. 그래도 꼼짝 못하는 괴상한 시절이었다. “박정희도 이 시점에서 물러선다면 역사에서 높이 평가받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이 한 줄의 설교에 신도들이 사색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난 3·1절 민주구국선언 40돌을 기념하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날처럼 겨레의 자주독립과 민주회복을 위한 미사를 드렸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직자들이 함께 기도를 바쳤다. 사건의 주역이었던 몇 분이 힘들게 와주셨지만 그 자리에는 더 이상 박정희도 없었고, 함석헌도 문익환도 김대중도 없었다. 모질게 때리던 자도 죽었고, 웃으며 얻어맞던 이들도 계시지 않다니 홀가분하기도 했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들은 천국에서 다시 만났을까? 미안하다고 했을까? 지난 일이니 용서해주마 했을까? 알 수 없다. 나중에 뵈면 여쭤봐야지 하면서 궁금증을 접었다. 그런데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게 인생이라지만 어째서 제각각 다르게 살다 가는지…. 다르게 살았으면 가는 곳도 다르겠지 하는 생각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새롭게 타오르는 3.1민주구국선언" 출전 기념회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 내외_경향DB


성경은 인생을 밀알이 땅에 떨어지는 일에 비유하며 죽어서 크게 산다는 역설을 가르쳐주고 있다. 저를 지키려고 끝끝내 버티면 고약하게 썩어서 아무것도 거둘 게 없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고운 흙에 자기를 보태주면 움트고 싹터서 백배의 열매를 거둔다고 말이다. 막상 현실을 접하고 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나는 기어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인생이고, 다른 하나는 한사코 져주며 살겠다는 인생이라서 그렇다. 어느 누가 지는 걸 좋아하겠는가? 때려도 안되겠지만 맞는 걸 좋아할 이는 없다.

그런데 역사에는 남을 애먹이다 망해간 자들 말고도 웃는 얼굴로 고난의 짐을 짊어져주다 가신 분들이 적지 않다. 인생이 복잡해 보여도 마지막에 가보면 죽임을 당하고 마는 자와 스스로 죽으러 가는 자, 이렇게 둘로 나뉠 것이다. 영영세세 떵떵거리고 살 줄 알았는데 어이없이 시들고 마는 시시한 물건들이야 흔해빠졌다. 반면 올 때야 남이 보내서 왔지만 갈 때는 나 스스로 죽으러 가야겠다며 시원스레 길을 나서는 이도 있다. 그는 누구인가? 져줄 수 있는 사람이다. 져주고 져주다 짊어져주는 사람이다.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철없는 아이와 욕심 많은 소인은 할 수 없다. 져주는 일은 어른만이 하는 일이요, 짊어져주는 일은 힘센 사람, 큰 사람만이 능히 이룰 일이다.

모처럼 명동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독재를 거슬러 민주를, 압제를 거슬러 자주를 외치며 평생 무거운 짐을 짊어지신 선배들을 영광스럽게 기억했고, 고난과 쾌거에 감사를 드렸다. 헤어질 때는 천하최강 알파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져주다 짊어져주다 마지막에는 스스로 죽으러 가는 사명을 나누어 가졌다. “나는 죽음을 안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이 땅 위에서 한 일의 몇 천 배, 몇 만 배 되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파스칼) 아름답다. 이 또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김인국 | 청주 성모성심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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