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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부처를 임으로 모시는 이들도 많고, 예수를 임으로 모시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부처, 예수가 아니더라도 높이 우러르고 싶은 대상을 우리는 임이라 부른다. 임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는데 물동이나 함지 따위를 머리에 이고 간다고 할 때의 ‘이다’라는 뜻도 들어있다. 사모하는 정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언제나 이고 다니고픈 ‘임’이라 했을까!

그러므로 아무나 임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함부로 임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도 안된다. 한 번이라도 임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그 무거운 이름값에 걸맞은 신중한 처신으로 보답해야 하고, 그럴 맘이 없으면 아예 ‘임’자를 떼고 불러달라고 해야 도리에 맞는다.

생각만 해도 절로 서럽고 눈물겨워지는 당신의 임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그 임은 지금 안녕하실까? 부처님은 여든의 천수를 누리신 다음 복되고 평화롭게 열반에 드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우 서른셋에 국사범으로 몰려 십자가 위에서 끔찍한 최후를 맞으셨다. 불자들에게 부처님은 고이 보내드린 임이지만, 기독자들에게 예수님은 원통하게 빼앗긴 임이다.

그래서 기독자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임이 종생하신 그날을 무심히 맞이할 수가 없어 장장 40일간 애통절통해하며 끙끙 앓는다. 이때를 사십일의 수행절기라고 해서 사순절이라 한다. 설 연휴의 끄트머리였던 엊그제 수요일이 사순절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외람되게도 특정 종교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부디 그리스도인들이 건성으로 사순절을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라서이지만, 그보다는 목숨 내놓고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와 자산들을 맥없이 강탈당하는 오늘의 현실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기왕 결례를 무릅썼으니 조금 더 말씀드리련다. 격랑의 때를 맞았으니 우리 모두 비상한 각오로 나라 안팎의 형편을 내다보자. 일상을 멈춰 세우고 크고 깊은 눈으로 전체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해졌다. 사순절을 지내시는 그리스도인들께서는 뜨거운 신앙열정에 가려 평소 주목하지 못하던 임의 사망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개신교의 4대강 사업 반대활동 범연대기구인 ‘생명의 강 지키기 기독교행동’(기독교행동)이 북한강변에서 ‘생명의 강 살리기 사순절 금식기도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기도소를 찾은 목회자·신도들이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_ 기독교행동


예수의 불쌍한 죽음은 권력자들이 인류공동체를 상대로 저질러온 추악한 범죄의 전형이다. 그러므로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예수를 죽음의 벼랑으로 몰고 갔던 자들의 음모를 오늘의 눈으로 분석하면서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세상의 혼군과 간신들의 악행을 미워하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는 그리스도인이 있으면 한번 붙들고 물어보라. 당신의 임은 왜 그리도 불쌍하게 죽은 거요? 시원한 대답을 듣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죄 사함을 위한 대속이니, 구원을 위한 보혈이니 하는 복잡한 해석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제 동포의 하얀 손목을 그어버린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앙인들부터 십자가란 도무지 이기심과 탐욕을 포기할 줄 모르는 자들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다보니, 그럭저럭 예수의 죽음은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된 어떤 신의 눈물겨운 사랑으로 변주되고 말았다. 그새 범죄는 미화되고, 악의 장본인들은 어둠 속에 정체를 숨겼으니 누구의 간계일까?

자고로 사순절은 빼앗긴 자들은 어째서 빼앗겼으며, 빼앗은 자들은 어떻게 빼앗았는지에 대해 뼈아프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빼앗겼던 자들은 지금도 뺏기고 있으며, 빼앗던 자들은 오늘도 빼앗고 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태연히 벌어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어찌할 텐가. 뾰족한 수가 없거든 끙끙 앓기라도 해야 한다. 원통하니 앓고, 분통하니 앓고, 절통하고 애통하니 앓아눕자. 그렇게 앓고 앓다보면 불현듯 알아지는 소식이 없지 않으리라. 앓지도 못하는 자에게는 털끝만한 앎도 허락되지 않는다.

시인은 “빈 대지에 불현듯 꽃눈이 터질 때/ 작은 것에도 감동할 시간을 위해/ 2월은 심심하고 고요한 달”(박노해)이라고 했지만 지금 형편은 심심하지도 고요하지도 못하다.

사순절이 시작되던 그날 오후 다섯 시,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북으로 가는 돈줄을 끊어야겠다면서 통일의 동맥을 절단해버린 것이다. 대체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우리는 시시각각 탈탈 털리고 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에 재를 얹기도 한다. 이제 나는 없다. 나는 죽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참담한 선언이다.

번번이 지켜드리지 못하는 임을 생각하면 차마 산목숨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살고 싶으냐? 성경은 말한다.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라.”(요엘 2,13) 아니다. 지금은 옷도 찢고 마음도 찢을 때다.


김인국 | 청주 성모성심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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