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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대법원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통해 회사에 970억원 손해를 끼친 혐의였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을 수임해 변호한 경력이 있었다. 그와 함께 삼성을 방어한 김종훈 변호사는 이번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하다.

이용훈 대법원의 핵심은 삼성사건 공동변호인 김종훈 비서실장, 광주일고 후배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전임 최종영 대법원장을 상대로 연판장을 돌린 이용구 송무심의관 등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멤버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행정처는 비대해지고 권력기구화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을 포함한 개혁·소장 법관들이 행정처 요직에 기용되거나 기타 권력의 주류에 편입되면서 (중략)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과 행정처 중심의 관료적 승진구조를 통한 법관 사회 관료화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 더 심화되었다. (중략)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라, 비판이 더 어려워졌다”고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판사들은 말한다.

#2. 2011년 대법원은 시국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줄줄이 깼다. 피해자들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만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도움으로 재심 무죄를 받았다. 이들의 손해배상금을 대폭으로 깎은 대법원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었다.

보통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에서 법원은 피해시점부터 판결일까지의 이자를 주도록 한다. 판결 전까지는 5%, 판결 후로는 20%이며 지연손해금이라 부른다. 그런데 대법원이 과거사 사건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 이자가 많으니 깎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준시점을 손배소송 항소심 변론이 끝난 날로 미루라고 했다.

더구나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보내지 않고 대법원 스스로 이자를 계산해 재판을 끝냈다. 이 판결은 이후 인혁당 피해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한 전직 대법관은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있다면 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판결은 한날 4건이 동시에 나왔고 주심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 박시환 대법관이다.

#3. 몇 해 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판사들이 인사를 돌았다. 이 법원에 새로 발령난 판사들은 관례대로 부장판사들 사무실에 들어가 줄줄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한 부장판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자신이 직접 밖으로 나와서 판사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인사의 대상도 부장판사가 아니라 재판부라며 자신의 배석판사를 데려나와 인사시켰다.

부장판사는 이후 법정에서 난동꾼을 막다가 다친 법정경위 소식을 듣고 배석판사와 재판연구원을 데리고 문병에 나섰다. 쓸쓸히 병실을 지키던 경위는 고위법관의 등장에 감동했다. 부장판사는 책임을 다하다 부상한 법정경위를 표창해야 한다고 법원에 주장해, 표창장을 받아주었다. 이 사람이 김명수 새 대법원장 후보자이고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그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에 단독 출마했을 때 만장일치 추대 대신 투표를 하자고 했다. 투표함을 여니 반대표가 있었다. 하지만 김명수 후보자는 반대표가 나온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국제인권법학회는 소수자도 견해를 밝히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조직이라는 것이다.

지금 법조계에 김명수 후보자에 관해 물으면 세 가지를 듣는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다는 것과 출세하려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법개혁 저지 의혹 사건에 관여한 세력들이 그를 붙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의혹의 핵심에는 과거 우리법연구회 멤버들도 있다. 누군가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기대도 우려도 모두 김명수 후보자 자신의 몫이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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