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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1년, 달라진 것은 뭔가
‘저항’ 이겨내고 인양 결정한 지금
우리의 실체와 마주할 고통 예고
오는 1년, 지난 1년보다 힘들 수도”


꿈 이야기 하나. 그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라고 할 만한 곳을 따라 해변을 걷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발이 젖었지만 피하지 않은 채 앞서 걷는 이와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앞서 걷는 이는 그의 정신분석가였다. 뒷짐을 진 채 걷는 분석가 앞쪽으로 사라센의 칼날처럼 빛나는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분석가처럼 뒷짐을 진 채 햇살 부서지는 해변을 먼 곳까지 바라보았다.

정신분석을 받는 이가 분석 석 달 만에 꾼 꿈의 사례이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은 자주 바다에 비유된다. ‘무의식의 깊은 바다’라는 비유처럼, 꿈 분석에서도 바다는 전형적으로 무의식이 표출되는 형태로 풀이한다. 분석 석 달 만에 꾼 저 꿈은 당사자가 분석 작업에서 첫 번째 저항을 넘어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누군가 마음을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할 때는 대체로 큰 사건을 경험한 직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파경, 자녀의 비행 등을 마주할 때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심리적 어려움을 느낀다. 대형 사건 앞에서는 우리가 평생 회피하고 억압해온 모든 감정적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치료 현장에 들어선 이들은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하는 만큼 간절하게,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저항’은 “무의식을 뚫고 들어가려는 분석가의 시도에 대한 환자의 방해”라는 뜻이다.

1년 전 우리는 눈앞에서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을 산 채로 바다에 묻었다. 그것은 피해 가족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는 트라우마였다. 당시 우리는 사고 원인을 낱낱이 규명할 뿐만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로 변화시키자고 다짐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부정부패와 비리의 몸통을 근본적으로 들어내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변화한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것은 ‘저항의 문제’로 보인다. 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정신분석을 받을 때조차 저항은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어떤 이는 분석가를 믿을 수 없다고 여기면서 자기 이야기를 조금도 털어놓지 못한 채 작업을 중단한다. 분석가에게 자기를 표현할 수는 있어도 분석가가 주는 공감과 지지를 믿지 못해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도 있다. 나르시시즘적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서슴없이 분석가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분석가에게 저항하면서 당사자들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라고 믿었던 실체, 그만하면 잘 운용해 왔다고 믿는 삶의 방식들이다. 그것을 해체 해야만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놓치면 죽을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앞서 소개한 꿈이 특별한 이유는 비로소 저항을 넘어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분석가를 믿고 따를 수 있으며, 무의식이 파도처럼 발을 적셔도 도망치지 않으며, 그 길이 멀더라도 담담하게 수용할 마음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그 사고와 관련된 다양한 저항의 경험을 지나왔다. 적극적으로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실천적 움직임이 없었다. 지연과 회피 행동도 저항의 일부이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잘해왔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 저항은 열심히, 잘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가에게 어필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대의에 밀려 부정부패 문제는 잠시 덮어두기도 했다. 무의식을 마주 보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다른 일을 핑계대는 행위는 저항의 흔한 방식이다.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문제로도 이견이 많았다. 돈이 많이 든다,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길 것이다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것은 정신분석을 받는 이가 저항 단계에서 하는 말과 똑같이 들렸다.

저항은 당사자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무의식에 억압해둔 괴물 같은 감정과 마주하기 위해 마음을 준비하는 기간, 조금씩 무의식의 파도에 발을 적시며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다. 그동안 부여잡고 있던 자기 이미지와 낡은 생존법을 포기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들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그 배를 인양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집단 무의식의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침몰선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요소들과 직면할 용기를 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신분석을 받는 이들이 자주 꾸는 꿈이 또 한 가지 있다.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종류의 꿈이다. 산소 호흡기 없이 바닷속 깊숙이 헤엄쳐 들어가는 꿈, 발을 삐끗하며 넘어졌는데 하염없이 바닷속으로 빨려드는 꿈 등이다. 이런 꿈들은 저항을 이겨내고 적극적으로 무의식의 바다를 탐험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때부터 피면담자는 분석가의 통찰을 수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내면을 탐사해나간다. 또한 이 지점부터 본격적인 고통과 갈등의 시간이 시작된다. 외면해온 자신의 부정적 실체를 인정하는 고통, 낯선 감정들이 나타나 내면에서 들끓는 혼돈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정신분석과 심리치료는 유년기의 미숙한 상태에서 만들어 가진 생존법에 상호의존성, 신경증, 강박적 요소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개선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 개별적 생존법이 변화되어 나간다. 궁극적으로 세계관과 비전, 생존방식 등이 성숙하고 건강한 형태로 변화되는 작업이다.

저항을 이겨내고 침몰선을 인양하기로 결정한 지금 우리는 집단 무의식의 한 꺼풀을 들춰내는 경험을 하고 있다. 서로 묵인하며 사용해온 상호의존적 생존법이 사회 문제가 되어 드러난 현장과 마주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의 잘못된 생존법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만약 이 지점에서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신경증적이거나 강박 성향의 생존법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들과 맞닥뜨릴 것이다. 인정하기 어려운 우리의 실체를 꺼내 마주 보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저항을 만날 것이고, 저항을 이겨내는 용기를 내어야 할 것이다. 예상컨대 오는 1년은 지난 1년보다 훨씬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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