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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산색(山色)은 투명하고 청신합니다. 숲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숲을 이루는 꽃과 나무가 형형색색 어울려 있기 때문입니다. 큰 나무는 작은 나무를 내쫓지 않고, 화려한 꽃은 소박한 야생화를 깔보지 않습니다. 함께하지 않으면 그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가니 큰 숲을 이루고 푸른 산이 되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회장님의 갑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인간은 산을 바라보고 감상할 줄만 알지, 산처럼 숲처럼 살려 하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특히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이른바 ‘큰 나무’와 같은 사람들일수록 그렇습니다.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합니다. 우리 인간도 나무와 꽃처럼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숲처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은 눈높이를 함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편견과 오만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곁을 보노라면 ‘아! 내 곁에 사람이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편지는 ‘갑질하는 회장님’에게 산중의 수행자가 보내는 글입니다. 산색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가슴으로 읽으시리라 믿습니다.

회장님! 지금 당신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 불편한 마음을 접고, 당신에게서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한 수행기사와 가족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당신이 저지른 행위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이 사람에게 그리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회장님은 인권과 평등이 자리 잡은 민주시대에 마치 전제시대 귀족처럼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당신의 의식세계는 ‘돈’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새로운 계급사회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에게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함께하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그 마음’이 아수라이고 지옥일 테니까요.


정우현 회장_경향DB

회장님! 당신은 언론과 대중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올렸습니다. 사과문을 읽고 또 한번 화가 났습니다. 사과문은 매우 잘 다듬어졌지만 진심과 진실한 성찰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다”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정직하지 않습니다. 자제력 부족과 미숙한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성찰해야 합니다. “저는 그동안 직원들을 존엄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밥줄이라는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행위의 미숙이 아닌 인격의 미숙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수행기사들에게 모멸감을 준 원인부터 진단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수행기사들에 대한 잘못된 행위를 사과했지만, 그것을 넘어 당신이 살아온 삶과 생각을 성찰해야 합니다.

진정한 성찰이 이루어졌다면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부끄러움이 정직하다면, 수행기사와 그 가족들이 느꼈을 모멸감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기사는 가족에게는 아버지이자 남편입니다. 회장님 회사의 수백 수천억 재산과 절대 바꿀 수 없는 귀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당신은 가족들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다시 해야 합니다.

회장님! 당신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공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한 뒤 피해자에 대한 개별적인 사과와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이참(理懺)’과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정직한 고백을 하고 보상을 해주는 ‘사참(事懺)’이라는 참회의 방식이 있습니다. 사참이 없는 참회는 이참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왜 지금 진정한 사참을 하지 않습니까? 피해자에 대한 보상, 진정한 사참이 없기에 사과문은 단지 회사의 면피용 입장문에 불과합니다.

회장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가 높은 스님이 허름한 옷을 입고 왕궁에서 마련한 공양 초대에 갔습니다. 그런데 수문장이 가로막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비싼 옷을 입고 가자 그제야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왕궁에 들어간 스님은 음식을 먹지 않고 옷 속에 자꾸 넣었습니다. 스님이 왜 이런 파격을 보여주었을까요? 당신이 직원들을 ‘돈’으로 본다면 직원들도 당신을 ‘돈’으로 보지 않을까요? 슬픈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지 않고 돈과 돈이 손을 잡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슬픕니다.

회장님! 바쁜 회사 일을 접고 잠시라도 자연의 품에서 홀로 머물며 많은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한 말씀 전합니다. “전쟁터에서 백만인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이다.” <법구경> 한 구절입니다.


법인 스님 | 대흥사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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