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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전 합의보다 진전된 것이며 현실적으로 최상의 결과였다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의 항변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서 결론짓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의 본질과 한·일 합의의 근본적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합의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 문제를 정치적 협상으로 결말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며 위안부 합의의 근본 문제였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1월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등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위안부 해결 없이는 일본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턱없이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여자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단심(丹心)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고, 친일 논란을 빚은 선친의 전력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국민 정서에 편승해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정치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일 기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외교적 자충수라는 게 문제였다.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정책에 첨병 역할을 하는 일본과 각을 세우는 것이 한·미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미국의 압박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가 택한 방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협상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이 협상은 구조적으로 한국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대일 외교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바람에 생긴 일이다.

초기 단계에 박 대통령에게 ‘일본과 외교를 이렇게 하면 나중에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다’고 경고하고 이를 막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했어야 하는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수장이던 윤 전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국민 모두가 수용할 수 없는 합의가 이뤄졌을 때는 장관직을 걸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윤 전 장관은 협상 결과 평가가 박하다고 항변할 것이 아니라, 외교장관으로서 한국 외교가 이길 수 없는 전쟁터로 끌려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생각해봐야 한다.

<유신모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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