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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너무 작은 꽃. 바라보면 눈이 간질간질해지고 종내에는 그 간지러움이 손으로 전염되는 꽃. 해서 다섯 손가락을 꽃잎인 양 괜히 오므려 보게 하는 꽃. 그리해서 나의 운명이 그려져 있다는 손바닥의 무늬도 한번 보게 하는 꽃. 그것은 산 아래 숲속, 큰 나무의 곁이나 낙엽들 사이에서 피어난다. 부러질 듯 가는 줄기와 좁다란 잎사귀에는 초록이 찰랑찰랑 넘쳐난다. 바닥에서 궁리해도 충분하다는 듯 그저 발등 높이까지밖에 자라지 않는 꽃. 그러니 예전엔 나 같은 자의 발에 얼굴을 더러 밟히기도 했을 것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다 숲으로 산산이 흩어져서 이 꽃들이 되었나. ‘별’자 돌림의 비슷한 형제들이 참 많기도 하다. 개별꽃, 참개별꽃, 큰개별꽃, 가는잎개별꽃, 쇠별꽃, 왕별꽃, 긴잎별꽃, 덩굴별꽃, 숲개별꽃 그리고 별꽃. 적어도 꽃이름 100개는 입에 넣고 중얼거리자는 결심을 하고 식물 전문가들의 뒤를 따라다닌 지 어느덧 세 해. 이젠 옹알이 수준을 벗어나 멀리서도 척, 이름을 댈 수 있는 꽃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야생화에 관한 한 이런 여유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는 내게도 이런 날이 오겠지. 혼자 힘으로도 제법 꽃산행을 나서는 것. 마음에 은근히 두고 있는 꽃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럴 때를 대비하여 한편에 꼬불쳐두고 싶은 꽃, 개별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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