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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전, 봄꽃을 마중하러 간 곳은 남양주의 천마산이었다. 산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작정하고 꽃을 보겠다고 산중으로 드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면 이젠 아래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걸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가는데 시선을 던지는 곳마다 꽃들이 꽂혀 있었다. 산속에는 정말로 꽃이 많이 있었고 저마다의 색깔과 생김새를 뽐냈다. 그동안 이름을 몰라 불러줄 줄을 몰랐으니 나에게는 꽃이 아니었던 꽃들. 공책에 낯선 이름들을 적으며 나아갔다. 계곡 언저리에는 현호색, 바위 틈에는 매화말발도리. 연신 쪼그리고 엎드렸다 일어나며 공책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산의 중턱에 이르렀다. 그저 걷기만 했더라면 허리가 뻐근했을 텐데 공부(!)에 열중하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


앞장서 가는 이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외쳤다. 링거줄 모양의 관을 꽂고 수액을 채취당하는 고로쇠나무 앞에서였다. ‘앉은 부처’로 들렸는데 확인해보니 앉은부채라 했다. 줄기도 없이 뿌리에서 곧장 큰 잎이 난다. 그 잎이 부채 같아서 제 이름을 얻은 야생화. 겨울 끝의 잔설을 좌대로 삼고 불염포로 열매를 감싸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그 불염포는 어깨로 흘러내리는 자주색의 가사장삼을 닮지 않았겠는가. 그 열매는 겨울을 이겨낸 짐승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먹이라지 않는가. 그러니 차라리 앉은 부처라 잘못 부르고도 싶은 앉은부채.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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