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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밥상에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건져 올리다가 봄나물 하나 없다는 사실을 문득 알아채고 부엌으로 눈을 슬쩍 흘기기도 하겠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두툼한 옷을 벗어던지고 겨우내 텁텁했던 입맛을 갱신하며 봄을 맞이하려는 정당한 투정으로 이해해 줄 법도 하다. 어디 봄나물이 대수랴. 밥상보다 아주 넓게 들판으로, 그 들판보다 조금 높게 야산으로 시선을 옮기면 바야흐로 벌어지는 꽃들의 잔치판. 그중에서도 봄의 교향악을 울리듯 먼저 피는 꽃들이 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안양의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을 보았다. 희끗희끗한 잔설 틈에서 꽃샘추위를 이기며 바람에 맞서며 피어나는 꽃이다. 중지(中指)로 키를 가늠하면 내 손가락 사이 골짜기에 닿을락말락. 그 작은 꽃 앞에 엎드리는데 스웨덴 생각이 났다. 사연이 있다.
2년 전 백두산 야생화 탐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일행 중에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아주 먼 나라에서 오신 분이 있었다. 사진은 물론 식물에 관한 지식도 전문가를 뺨칠 수준이었다. 어떻게 그 멀리서 이 자리까지 오셨습니까? 식사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았더니 돌아오는 호탕한 말씀. “시댁이 경주 근처였는데 변산바람꽃을 보고 그만 홀딱 반해 버렸지요. 어쩌다 스웨덴에 눌러앉았지만 아직도 고국의 꽃소식에 늘 가슴이 설레지요. 변산바람꽃의 그 야들야들한 연보랏빛 수술 좀 보세요. 그 꽃이 그만 내 운명을 바꾸어버렸네요.” 사진을 찍고 일어나 꽃을 유심히 보았다. 바깥의 흰 5장은 실은 꽃받침잎이고 꽃잎은 그 안에 조그맣게 깔때기 모양으로 있다. 오밀조밀한 꽃 안의 세계에서 특히 작은 기관에 주목했다. 한 젊은 새댁의 인생을 바꾸게 한 변산바람꽃의 저 야들야들하고 꼬물꼬물한 수술! 미나리아재비과. 한국특산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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