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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북한산 갈 때 구기동에서 올라 백운봉 찍고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날도 있었다. 도떼기시장처럼 왁자지껄한 식당 한구석에 자리 잡으면 찌그러진 주전자에서 콸콸콸 쏟아져나오는 막걸리.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는 참새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인 쨍한 자리에서 그 한 사발을 생략할 순 없었다. 산중에선 발을 사용하느라 제법 홀쪽해졌지만 시내에선 젓가락을 분주히 놀리느라 또 띵띵해졌다. 무릇 등산이란 산으로 상승할 때도 좋지만 집으로 미끄러져들 때는 더욱 좋은 법 아닌가. 은근한 취기와 종아리의 뻐근함에 취한 채 까딱까딱 졸면서 버스에 실려갔다. 그렇게 불콰한 기운으로 단풍잎 같은 얼굴을 달고 귀가하면서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늘 하루 밟은 북한산의 능선이 귀에 걸렸다. 이런저런 등산객들을 배출하고 평온에 깃드는 북한산은 어쩌면 옆으로 누워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포즈! 방 안에서 뒹굴지 않고 산바람을 쐰 이런 날은 그래도 큰일이라도 해낸 듯 마음이 넉넉해졌다. 저 멀리 산은 오로지 내 힘과 땀으로 오늘을 투자해 벌어둔 재산(財産)처럼 든든했다. 월요일이 쳐들어와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일요일의 저녁.

최근에는 먼 산을 간다. 그냥 산의 거죽만 더듬는 게 아니다. 나무도 가늠하고 꽃도 본다. 바지는 물론이고 팔꿈치에도 흙 묻힌 채 귀경하는 버스에서 어둠에 잠든 능선을 보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는 시간. “어째서 산은 삼각형인가 어째서 물은 삼각형으로 흐르지 않는가 어째서 여자 젖가슴은 두 개뿐이고 어미 개의 젖가슴은 여덟 개인가 언제부터 젖가슴은 무덤을 닮았는가 어떻게 한 나무의 꽃들은 같은 색, 같은 무늬를 가졌는가”(이성복) 그리고 내처 백암산 정상 조금 못 미쳐 어느 무덤가에서 만났던 세잎양지꽃, 오종종한 5장의 노오란 꽃잎과 항상 삼각편대를 이루며 털이 북실북실한 줄기 끝에 매달린 3장의 작은 잎들, 무리지어 자라는 그 대가족을 가슴에 옮겨심어 집에까지 데리고 가기도 한다.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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