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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집 한번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라고 말한다. 단지 예쁘기만 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만족스러운 집을 짓는다는 것이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집을 짓는 다는 것은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그만큼 고통이 뒤따르는 법이다. 집을 짓는 시기, 예산과 규모 결정, 부지선정, 현장방문, 공적장부 검토 등 어려운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일반주택도 한번 건축하기가 힘든 일인데,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어울리는 소방서를 짓는 일은 당연히 그 고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세종특별자치시 소방본부, 경남 남해소방서, 경북 경산소방서, 태백소방서 화전119안전센터, 중앙119구조본부 대구청사 등이 신축되었으며, 앞으로도 경기도소방학교 화재종합훈련장, 서울 성동소방서, 서울 은평구 소방행정타운 등이 신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소방서 설계기준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소방관들을 위한 구체적인 안전 및 보건기준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2014년 7월에 작성된 서울 성동소방서 신축공사에 따른 설계기준 및 같은 해 10월에 나온 심사결과를 살펴보면 신속한 출동을 위한 공간배치와 출동동선을 강조한 내용이라든지, 소방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가스에 대한 대비책을 설계시 반영하라는 내용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이마저도 야간 당직자를 위한 당직실이 지상 3층에 위치해 있어서 야간에 30초 이내(주간 20초 이내)라는 차고지 탈출기준 시간에 맞추기 위해 뛰어내려오다가 부상을 당할 우려가 높다.

미국에서는 소방관의 안전과 보건을 고려한 소방서 및 훈련센터의 설계기준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방화협회(NFPA) 기준 1402, 1403 그리고 1500이다.

한편, 미국의 <FIREHOUSE>라는 소방잡지사는 매년 소방서 청사를 심사해서 디자인상(Design Award)을 수여하고 있다. 벌써 14년째 해 오고 있는 일이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소방서 청사 건축 경험이 있는 전·현직 소방서장 4명과 건축가 2명이 심사의원으로 위촉되었다. 심사위원들은 단지 외형적으로만 근사한 건물에 높은 점수를 주기보다는, 소방대원들의 보건, 안전 그리고 복지를 위한 따스한 쉼터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심사한다.

2014년 미국에서 건축된 소방서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소방서 청사 내부 어디에서든지 빠르고 효과적인 출동 동선을 구축하기 위한 공간배치, 건축비용이 크게 들지 않으면서도 소방대원들을 위한 다목적 훈련시설을 짓는다든지, 방화복 보관을 위해 통풍이 잘 되는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고, 여성소방대원의 수가 증가함에 따른 숙소 증설도 추세다.

여기에 소방대원의 암을 예방하기 위한 소방차 배기가스 배출시스템 설치, 유해가스로부터 소방대원을 지키기 위해 소방대원 숙소에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 출동 후 2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방화복 전용 세탁기 및 세탁공간 확보, 보안을 위해 소방서 청사 주변 감시카메라 설치, 친환경 소방서를 구현하기 위해 자연 채광을 최대한 반영한 설계 등도 주목할 만하다.

2014년 디자인 금상을 수상한 애리조나 주 Buckeye Valley Fire Station No. 326


미국에서 소방서 청사를 신축할 때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수요조사(Needs Assessment) 단계, 기획(Planning) 단계, 디자인(Design) 단계, 그리고 건축(Construction) 단계다.

수요조사 단계에서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부지, 장비, 차량, 그리고 인원 등을 파악한 뒤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출동서비스를 갖추기 위해 청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적어도 향후 20년 동안 해당 지역의 발전 가능성과 성장도를 평가하여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기획단계에서는 지역사회 요소요소를 고려하고, 주변 이웃들의 상황 및 각종 제약사항 등을 파악해서 부지를 선정한다. 부지가 선정된 이후에는 환경 및 교통 평가를 실시하고, 추후 도로 증설계획이 있는지 또는 화재취약지구가 있는지를 연구한 뒤, 건축에 따른 예산을 편성한다. 예산 편성 시에는 현장답사비용, 기존 건물 철거비용, 각종 인.허가 비용, 컨설팅 비용 및 건물 표지판 등 세세한 분야까지 챙겨봐야 한다.

다음으로 디자인단계가 참 중요하다. 소방서 청사를 디자인할 때에는 안전, 다목적 훈련, 건물의 견고성, 향후 개보수의 용이성을 고려해서 설계한다.

마지막으로는 건축단계다. 소방서에는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사무용 공간, 소방대원들을 위한 숙소 및 주방, 출동차량 차고, 기타 구급대원들을 위한 위생실(Medical Room) 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을 잘 반영해서 견고하면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개보수가 용이하게, 그리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지어야 한다.

대한민국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제1조>는 소방공무원에 대한 보건안전 및 복지 정책의 수립·시행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소방공무원의 근무여건 개선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소방공무원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소방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여 소방서비스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더 많은 소방서, 안전센터, 그리고 소방훈련시설 등을 짓게 될 것이다.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에너지를 활용하고, 지역사회에 잘 어울릴 수 있는 친환경적인 소방서를 지어야 한다. 또한 테러나 재해에 대비한 안전한 소방서를 지어 지역주민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소방서를 지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건축 전문가에게 의뢰하기 이전에 소방서의 주인인 소방공무원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소방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과 보건이 최대한 반영된 소방관을 위한 안전 및 보건설계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소방서 청사는 소방의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소방관이 보다 더 쾌적하게 근무하고, 안전하게 훈련하고, 건강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과 보건의 종합체>가 되어야 한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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