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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소방과 인연을 맺은 지도 20년이 되었다. 평생을 소방인으로 살아오신 선배님들의 연륜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지식과 경험이지만, 어느새 내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1995년 서울시 소방공무원으로 임용이 되어 공무원 선서를 하고 소방관으로써의 삶을 시작했다. 지방소방사 시보 시절부터 매일 제복을 입고 출근과 퇴근을 하던 패기 넘치던 20대를 보내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의 옷이 아닌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에서 소방검열관이란 옷을 입고는 있지만 내가 소방관이라는 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다.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이 소방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인터넷에는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가 늘어나고, 소방공무원 입시를 도와주는 학원들도 증가 추세다.

며칠 전 시간을 내서 어느 한 소방입시학원을 방문했다. 자그마한 강의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모두 소방공무원이라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선의의 경쟁자이자 대한민국 미래의 안전을 책임질 동료들이다.

하지만, 소방공무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우선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고, 소방에서 요구하는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체력시험을 거쳐, 신체검사를 통과한 뒤 마지막으로 면접까지 가야 한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도핑테스트도 실시한다고 하니 소방관이 되는 길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만 비로소 119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시민들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방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을 살펴보면, 2013년 광주의 경우 무려 46.6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2014년의 경우 대전은 무려 35대 1에 달하며, 서울시 구조분야 특채의 경우에도 31.1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소방관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일까?

소방입시학원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이 되면 퇴직연금 및 퇴직수당을 지급 받아서 노후생활이 보장된다고 하며,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도 있고, 국비로 대학 및 해외유학의 기회도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각종 처우 및 수당이 현실화되어 평생 안정적인 직장으로 사랑받고 있다고도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안정적인 직업만을 원한다면 굳이 힘들고 위험한 소방공무원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시민들의 삶 속 깊은 곳에 들어가 119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하는 것은 안락하고 쾌적한 삶보다는 힘들고 고생스러운 가시밭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마치 홈쇼핑에서 그럴싸한 물건을 보고 지름신의 도움을 받아 충동적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평생 소방관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끊임없이 고된 훈련도 받아야 하며,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매일 새롭게 변화하는 추세에 맞춰 가기 위해서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 건 _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이렇듯 소방관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참으로 많은 고민과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더더욱 ‘소방관이 되면 근사한 복지혜택이 주어지고 평생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라는 홍보문구에 현혹될 일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약 4만여 소방공무원이 있다. 소방에 처음 입문할 때는 각자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안정적인 직장 때문이든지 아니면 사명감이든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오늘 시간을 내어 자신의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서 보자. 언제부터인가 웃음기가 사라진 무표정한 얼굴, 공무원 생활로 인해 단단하게 굳어버린 몸과 마음,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감사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그렇게 입고 싶었던 119 유니폼은 그냥 작업복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소방관의 맹세는 잊어버리고 그냥 하루하루를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지금도 숨 막히는 강의실에서 수많은 유혹들을 멀리한 채 소방관이 되기 위해 땀을 흘리며 공부하는 미래의 후배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 그들에게는 우리가 입고 있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119 유니폼이 세상 어느 비싼 옷보다도 더 간절히 입고 싶은 그것이다.

요즈음 마음속에 감사함이 사라지고 보고 듣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불만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정신 차리고 마음속으로 외쳐보자. ‘나는 누군가의 꿈이다’ 라고 …


이 건 |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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