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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코미디언 백남봉은 서울의 동네 이름으로 이런 만담 한 자락을 펼쳤다. ‘청량리’ 거쳐 ‘중랑교’로 가는 버스의 차장이 외치는 말은 너무도 빨라서 이렇게 들렸다는 것. “차라리 죽으러 가요.” 아직도 귀에 쟁쟁한 그 음성은 어쩌면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그 고단한 시절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으로 그냥 넘어가 주었다.

긴 연휴, 짧은 생각. 하루는 늘 하루 만에 오늘 저의 자리를 깔끔하게 비운다. 어느덧 마지막은 오고 두부처럼 네모난 방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한강 근처가 무슨 고원지대도 아닐 텐데 서울로 오는 것을 왜 상경(上京)한다고 할까. 고속도로 사정을 전하는 뉴스를 뒤로하고 서울의 가장 낮은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명절 뒤끝의 허전한 마음도 높은 곳이 아니라 그곳으로 쏠리는 듯했다.

그곳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 시의 소재나 소설의 무대로 익힌 바이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 시대의 이름난 풍수학인이 들려준 바도 그곳이었다. 선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감당 못할 번뇌가 밀려오면 그곳을 찾아 머리를 말갛게 씻었다고 했다. 누구에겐 그저 멀뚱멀뚱한 곳에 불과했지만 또 누구에겐 삶의 비의를 열어준 장소였던 셈이다.

오늘은 내 오랜 숙제를 해결할 가장 맞춤한 기회였다. 용마산~아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짚으며 그곳으로 가는데 안내판 하나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 이곳을 자신의 능지로 결정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고개 위에서 뒤를 돌아보고는 과연 명당이라 이제는 근심을 잊게 되었다라고 경탄한 데서 지금의 망우(忘憂)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망우리 공원묘지. 지명이 주는 그 어떤 숭고함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허무는 망우리 사잇길’을 거닐다 보니 세상에 없던 마음의 면적을 새로 개간한 느낌이 들었다. 죽산과 만해의 산소에 절하고 내려와 중랑교, 청량리 거쳐 환생하듯 귀가하는 길. 이미 고인이 된 원맨쇼의 달인이 구사한 만담의 결을 따른다면 경자년 추석을 망우리에서 이렇게 마무리한 셈인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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