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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이 일하는 편의점 바로 옆 상가는 한 은행의 자동화기기 창구였고, 다시 그 옆은 통닭 한 마리에 칠천원씩 파는 옛날통닭 전문점이었다. 옛날통닭 두 마리를 사면 만이천원.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했는데, 따로 배달은 하지 않고 홀에 테이블 네 개를 두고 생맥주와 소주를 함께 팔았다. 정용은 퇴근할 때마다 옛날통닭 전문점 안을 힐끔 바라보곤 했다. 손님이 한두 명 앉아 있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부가 한 테이블씩 꿰차고 앉아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마치 지금 막 싸운 사람들처럼 말이 없었고, 지친 표정들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얼마 전이던가, 실제로 정용은 편의점 밖으로 재활용품을 내놓기 위해 나왔다가 옛날통닭 전문점 부부가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신경질이야, 신경질이!” 아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발끝으로 툭툭 입간판을 차던 남편이 대꾸했다. “모르면 관두든가….” “아까 그 닭 때문에 그러는 거야? 성희 엄마한테 준 통닭?” 여자가 묻자 “닭이 남아나지, 아주 남아나.” 남자가 퉁명스럽게 뇌까렸다. “아이고 이 쪼잔한 인간아, 성희 엄마한테 우리가 꾼 돈이 얼만데? 아까도 이자 받으러 온 거 몰라서 그래? 성희 엄마 아니었으면 우리 벌써 길바닥에 나앉았다고!” 마르고 키가 큰 아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새된 목소리를 내질렀다. 남자는 살집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담배를 문 채 계속 이죽거렸다. “한 마리만 주면 되지, 두 마리까지 싸줄 게 뭐야” 남자가 먼저 점포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여자는 한참 동안 혼자 씩씩거렸다. 그러다가 우두커니 서 있던 정용과 눈이 마주쳤다. 정용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지만, 여자의 눈이 그렁그렁해져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 뒤로 정용은 퇴근할 때마다 버릇처럼 그들 부부의 상황을 살폈다. 장사라도 잘되면 괜찮으련만, 그럴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더 나빠진 건 자동화기기 창구 바로 앞에 한 노부부가 자리를 잡고 붕어빵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노부부는 리어카에 붕어빵 기계를 싣고 와 장사를 시작했다. 붕어빵 두 개에 천원, 이천원을 내면 다섯 개를 주었다. 팥 붕어빵뿐만 아니라 슈크림 붕어빵도 팔았는데, 그게 꽤 맛이 좋은 모양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퇴근 무렵만 되면 노부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보였다. 정용도 몇 번 퇴근하면서 그 붕어빵을 사간 적이 있었다. 붕어빵 맛은 둘째 치고 정용에겐 그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로 할머니가 붕어빵을 굽고, 할아버지가 그것을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방식으로 일했는데, 부부 사이가 마치 이제 막 결혼한 사람들처럼 금실이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자주 할머니의 등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러주었고, 할머니는 틈만 나면 할아버지의 입속으로 견과류 따위를 넣어주었다. 언젠가 한번 비 오는 날엔 할아버지가 우비를 입은 할머니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우산을 받치고 서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붕어빵 맛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에이 참, 꼭 여기서 저런 것을 팔아야 하나?”

편의점 점장은 붕어빵 노부부를 볼 때마다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냈다.

“그래도 뭐 우리랑 겹치는 걸 파는 것도 아니니까요….”

정용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붕어빵을 산 사람들이 편의점에 들러 우유나 탄산음료를 사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왜 겹치는 게 없어? 붕어싸만코는 뭐, 같은 붕어 아닌가?”

정용은 멀거니 편의점 점장을 바라보았다. 저건 뭔 붕어 같은 소리인가? 정용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편의점 점장은 정말로 심각하게 붕어빵 노부부를 자신의 경쟁업체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정용이 출근할 때마다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네가 나가서 말 좀 해봐.”

“제가요…?”

“여기 말고 다른 곳 가서 하시라고 그래. 저쪽에 가면 공원도 있다고.”

정용은 그때마다 일단 편의점 밖으로 나오긴 나왔다. 하지만 차마 붕어빵 노부부에게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는 괜스레 붕어빵 리어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점장이 “말했어?”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라고 대충 둘러대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하루, 점장이 또다시 보채서 편의점 밖으로 나온 정용은 노부부 앞에 서 있는 옛날통닭집 아내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 저희도 정말 힘들어요.”

옛날통닭집 아내가 말했지만, 노부부는 못 들은 척 계속 붕어빵만 굽고 있었다.

“사람들이 통닭 사러 왔다가 그냥 붕어빵만 사 들고 간다고요.”

“미안해요, 미안해. 우리도 이게 먹고살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라서….”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리어카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거, 너무하네”, “어르신들이 하는 일인데” 하면서 수군거렸다.

“저희는 월세도 내야 한다고요….”

옛날통닭집 아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옛날통닭집 점포 안에서 남편이 나와 아내 옆에 섰다. 그는 잠깐 동안 노부부 쪽을 노려보다가 조용히 자신의 아내를 일으켜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내의 어깨를 감싼 손을 풀지도 않았다. 정용은 그들이 점포 안으로 사라진 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용이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자 점장이 물었다.

“말했어?”

“네.” 정용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뭐래?”

“그냥 다 미안하대요.”

“미안하대? 그게 전부야?”

“네….”

점장은 편의점 유리창 밖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에이 씨, 나도 편의점 밖에 나가서 어묵이나 팔아볼까?”

정용은 묵묵히 그 말도 견디면서 서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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