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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절대 웃으면 안된다, 알았지?”

조의금을 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던 진만과 정용에게 접수대 뒤에 앉아 있던 영걸이 마치 은밀한 지령이라도 전달하듯 말했다. 

영걸은 진만과 정용의 대학 동기였다. 대학교에 다닐 땐 함께 PC방도 다니고 축구도 하면서 꽤 친하게 지냈는데, 졸업 이후 연락이 뜸했다. 전해 들은 말로는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경기도 어디 의류상가에서 일한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입고 있는 와이셔츠도, 양복도 말끔해 보였다. 비록 장례식장 접수대 뒤에 앉아 있었지만 어쩐지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용과 진만은 늘 입고 다니는 하얀 면티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뭔 소리야?” 정용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들 뒤로 바로 다른 조문객 두 명이 들어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냥 빨리 절만 하고 나오라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과 정용의 대학 동기인 형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어젯밤의 일이었다. 형수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기숙사 룸메이트로 2년 가까운 시간을 진만, 정용과 함께 보낸 친구였다. 

전남 무안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집의 장남이자 대형 특수농기계 자격증 보유자이기도 했던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 빨래 건조대를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책상 뒤편을 말끔하게 정리한 것도 그였고, 진만이 부러뜨린 이층 침대 원목 사다리를 사감이 보기 전에 멀쩡하게 수리해낸 것도 형수였다. 기숙사 내에 그의 손재주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 문고리가 망가지거나 세탁기 호스가 빠졌을 때마다 ‘오공! 오공!’ 어김없이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는 때 이른 탈모 증상으로 인해 옆머리를 최대한 가운데로 끌어모으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만화 속 손오공의 모습을 빼닮았고, 그것이 그대로 그의 별명이 되었다. 진만과 정용은 ‘오공’ 대신 ‘햇양파’라고 불렀는데, 그거나 이거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고향인 무안으로 내려갔다. 기숙사에서 같이 술을 마실 때도 몇 차례 자신이 경영학을 전공한 것은 양파 협동조합 운영에 도움이 될까 싶어 그런 거라고 말한 바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무안의 특별한 황토에 대해서 여러 번 얘기했었고, 그 땅에서 나는 양파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진만과 정용은 그럴 때마다 말없이 안주로 사 온 양파링만 깨지락깨지락 먹었다. 이거야 원, 황토 안 깔린 고향에서 자란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또 한편 해야 할 일이 확실한 그가 부럽기도 했다. 양파든 부추든 미나리든 어쨌든 무언가 정해져 있었으니까.

사실 진만과 정용은 장례식장에 오기 전 조의금 문제 때문에 잠깐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정용은 그래도 십만원은 해야 한다고 말했고, 진만은 오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럼 너는 오만원 하고 나는 십만원 하면 되겠네, 정용이 말하자 진만이 바로 발끈했다. 그럼 나는 뭐가 되냐, 뭐 누구는 십만원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이러는 줄 아느냐, 목소리까지 높이며 화를 냈다. 그래도 우리가 걔한테 얻어 마신 양파즙이 얼마인데, 라고 정용이 말끝을 흐리자, 상황이 그렇잖아, 상황이, 하면서 진만이 더 크게 씩씩거렸다. 결국 그들은 조의금 봉투에 오만원씩만 넣었다.

신발을 벗고 빈소 안으로 들어가 남들 다 하는 것처럼 향을 피우다가 진만과 정용은 슬쩍 형수의 아버지, 그러니까 돌아가신 고인의 영정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진만은 저도 모르게 흡, 안간힘을 다해 숨을 참았는데, 그러지 않고선 곧바로 웃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형수의 아버지는, 그러니까 고인이 된 구석민 어르신은, 형수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만 머리카락만 하얗게 셌을 뿐이었다. 평생을 양파 농사를 지은 분답게 영정 속 고인의 피부는 벌겋게 그을려 있었다. 그러니… 아아,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도… 자꾸만 형수의 별명인 ‘햇양파’가 떠올랐던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웃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진만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종아리에 힘을 주었다. 절을 하려고 섰는데 저도 모르게 상체가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정용도 진만과 마찬가지로 숨을 참고 있는지 목과 이마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삼육구, 삼육구, 일, 이, 짝! 진만은 계속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칠레 수도는 산티아고, 콜롬비아 수도는 보고타, 대한민국 양파의 수도는 무안, 무안에서 나오는 햇양파… 아니다, 아니다, 참아야 한다… 진만은 겨우 두 번 절을 올렸는데 그사이 귀밑머리 아래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다행히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 잘 참았는데… 형수와 맞절을 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풉, 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형수 아버지 때문이 아니었다. 상주인 형수의 머리가, 아마도 며칠 제대로 감지도 못한 게 뻔한 형수의 가운데 머리카락이, 더 뾰족하게 하늘로 솟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줘서 고맙다.” 육개장을 먹고 주차장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형수가 따라 나와 인사를 했다. 조의금을 받던 영걸도 따라 나왔다. “네가 더 나빠, 이 새끼야!” 진만이 영걸의 배를 주먹으로 툭 쳤다. 자기가 웃음을 참지 못한 게 다 영걸 때문인 거 같았다. “양파값 많이 떨어졌다며?” 정용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 몇 해 걸러 한 번씩 꼭 그래.” 형수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진만은 자신이 더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그들은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힘내, 햇양파.” 이번엔 진만이 웃지 않고 말했다. “그 좋은 황토, 어디 가겠냐?” 형수가 진만을 보며 슬쩍 웃었다. 형수의 나이는 올해 스물여덟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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