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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전화를 걸어온 민화는 마지막 코끼리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마지막 코끼리?” 

나는 이불을 끌어 올리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오늘 오후 2시49분에 지구상 마지막 코끼리가 죽을 거래. 이제 세상에 코끼리는 없어.”

언론은 늘 ‘마지막’, ‘멸종’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며 인간의 ‘마지막’ 남은 감수성을 자극해왔다. 사실은 복제 기술 덕분에 생명 종 다양성은 얼마든지 실현 가능해졌다. 인간도 과학기술상으로는 복제 가능한 세상이다. 단지 불법일 뿐이다. 코끼리 복제가 어려울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호기심에 민화를 따라가기로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후 2시경 안락사 장소인 ‘종 다양성 연구소’에 도착했다. 마지막 코끼리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이미 10만 명이나 있었다. 하늘에는 대형 코끼리 애드벌룬이 띄워졌다. 웃고 있는 분홍 코끼리였다. 자율주행차 운전석에 앉은 민화는 인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올해로 몇 살이지?” 

나는 민화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렇지 제 나이도 잊냐? 백마흔.” 

“오늘 죽는 코끼리는 몇 살일까?”

코끼리 나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차는 스스로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민화가 이어서 말했다.   

“코끼리는 보통 60년을 산대. 인간 평균수명 150세의 절반도 못 사는 셈이야.”

오후 2시35분이 되어서야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니 3층 높이 축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축사 앞 원형 울타리 주변을 에워쌌다. 주변이 어수선한 가운데 상인이 인파들을 헤치며 외쳤다. 

“마지막 파리! 마지막 모기도 있어요!”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가 가져온 건 파리와 모기 화석이었다. 그것들은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후 멸종되었다. 복제 기술이 있지만 꿀벌과 달리 수익성이 없으므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아이들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파리, 모기 화석을 사주어야 했다. 민화는 호박에 갇힌 곤충처럼 통째로 화석이 된 모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당장 윙윙 소리를 낼 것 같은 모기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모습을 한 채 시간에 갇혀 있었다. 요즘은 사체를 빠르게 냉동시킨 후 고분자 크리스털에 넣는 급속 화석이 유행이다. 이렇게 하면 크리스털 안에 갇힌 멸종 생물들은 죽기 전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오후 2시45분이 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유니폼을 입은 사육사가 나왔다. 그는 코끼리가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2년이나 축사 생활을 했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안락사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제 나옵니다. 큰 박수를!”

높이가 3m는 될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코끼리가 고개를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마지막 코끼리는 큰 문과 대비될 정도로 조그마했다. 게다가 앙상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곳에 지구상 최고의 육지 동물은 없었다. 코끼리가 느린 속도로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자기를 보러온 구경꾼들을 잠시 둘러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난데없이 울타리 주변을 돌았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사육사가 그런 명령을 한 게 아니었다. 민화가 말했다. 

“서커스 출신 코끼리들의 습관이야. 곧 죽을 녀석이 원형 무대만 보면 돌아.” 

삐익삐익 소리도 냈다. 관중들을 향해 했던 팬서비스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다 힘없이 주저앉았다. 울타리 주변이 조용해졌다. 

“코끼리는 공룡 멸종 이후 육상 동물 중 가장 큰 동물이란다.” 

내 옆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속삭였다. 2시47분이 되자 사육사는 코끼리를 축사로 데려갔다. 

축사 앞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코끼리의 안락사 장면이 AR(증강현실)로 펼쳐질 예정이다. 2시48분 눈앞에 코끼리가 쓰러져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49분 간호사가 주사기를 가져온다. 녀석의 등에 긴 주삿바늘이 꽂힌다. 

“잘 가, 알리.” 

사육사가 외친다. 50분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다. 눈을 감는다. 51분 코끼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가 코끼리 코에 귀를 갖다 대더니 입을 삐쭉인다. “죽었나봐.” 52분 코끼리 머리 위로 흰 천이 씌워진다. 53분 코끼리는 화면 밖으로 옮겨진다. 

AR 화면이 꺼졌다. 민화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하얀 가루가 담겨 있었다. 

“뭐야?” 내가 물었다. 

“남편 유골.”

“그걸 왜?”

“난 항상 이걸 들고 다녔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고 말이야. 그런데 50년째 들고 다닐 줄은 몰랐어.”

민화가 주머니를 뒤집었다. 하얀 뼛가루가 땅에 떨어졌다. 

“인간이 한계수명을 넘어 무병장수까지 실현하는 동안, 코끼리는 왜 사라져 갔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사육사가 다시 나왔다. 

“마지막 코끼리 화석이 나왔습니다. 최첨단 급속 화석화 방식으로 5분 만에 부위별 화석을 얻는 데에 성공했죠. 먼저 코끼리 코 화석부터 선보이겠습니다. 추모하는 마음으로 기부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방금 죽음을 지켜본 코끼리는 어느새 토막토막 잘린 화석이 되었다. 코 다음으로 상아, 그다음으로는 귀, 그리고 다리 화석이 나왔다. 코끼리 코와 상아 화석을 원하는 사람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야 했다. 이곳은 흡사 경매장 같았다. 

사람들이 원했던 부위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코끼리 발톱 화석에 기부금을 냈다. 크리스털 안에는 귀여운 발톱이 담겨 있었다. 코끼리 발톱을 본 건 처음이었다. 민화는 내가 산 화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돌아가는 길에 애드벌룬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봤다. 한없는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웃고 있는 분홍 코끼리였다.

<김재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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