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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넌… 날 어떻게 생각해?”

진만이 유정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생각해?”

유정은 반찬으로 나온 양념게장을 우물거리면서 진만을 바라보았다.

“그게… 왜 우리… 예전엔 좀 그랬잖아….”

진만은 유정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물컵을 들어 올렸다. 귓불에서 맥박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귓불아, 나대지 마라. 괜찮다, 괜찮아…. 

“뭘 그랬다고 그래, 우리가?”

유정이 밥주발 뚜껑에 앙상한 게 껍데기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왜 학교 다닐 때 같이 밥도 먹고… 도서관도 가고… 자취방까지 내가 바래다주기도 하고 그랬잖아….”

진만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목까지 홧홧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려운 고백을 이제 막 마친 기분이었다.

카드회사에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40만원이 충전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진만이 처음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운동화도, 소고기도 아닌, 대학 동기인 유정이었다. 왜 뜬금없이 유정이 떠올랐을까? 따지고 보면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진만은 시시때때로 유정을 생각했다. 말하자면 혼자 김밥천국에서 참치김밥을 먹을 때나 알바 끝내고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 진만은 유정을 생각했고 그때마다 카톡을 열어 유정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두 번인가, 진만은 유정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잘 지내니? 그냥 갑자기 네 생각 나서….’ 유정도 진만의 메시지에 대꾸해주었다. 언제 한번 보자. 맥주나 한잔하지 뭐. 진만은 유정이 보내온 메시지를 자주 열어보았다. 하지만 다시 유정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지는 못했다. 이유? 이유는 서른아홉 가지 정도 들 수 있겠으나, 역시나 가장 첫 번째엔 돈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얼굴 보면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할 텐데… 알바 대타 뛸 사람도 구해야 하고… 그러자면 하루 일당이… 매번 그런 생각 끝에 휴대폰을 치우고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알바를 그만둔 뒤로는 아예 접고 말았다. 썸도 연애도, 마치 무슨 알바 시급처럼 숫자로 계산되었다가, 숫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 감정이 긴급재난지원금과 함께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진만은 유정과 모교 정문 앞에서 만났다. 그들의 모교는 진만이 사는 광역시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떨어진 중소도시에 있었는데, 유정은 아직도 그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세 시. 흰색 마스크를 쓴 유정이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와, 진짜 왔네? 유정은 진만의 팔꿈치를 툭툭 치면서 환하게 웃었다. 따지고 보면 거의 사 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머리가 좀 길어진 거 빼곤 변한 게 거의 없어 보였다. 뭐 돈 꾸러 온 건 아니지? 유정은 그 말을 하면서 마스크를 벗었는데, 그러곤 혀를 장난스럽게 삐쭉 내밀기도 했다. 그 바람에 진만은 긴장이 풀리게 되었다. 마치 예전 대학교에 다닐 때처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아아, 좋구나. 정부가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구나, 이런 데 쓰라고 긴급재난지원금도 주는 거구나…. 진만은 유정과 함께 천천히 캠퍼스 안을 걸었다. 캠퍼스는 썰렁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더 어떤 무대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뭐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마련된 장소구나. 진만은 무덤덤하게 서 있는 플라타너스에도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거야 네가 불쌍해 보여서 그랬지….”

유정은 다시 젓가락으로 잡채를 집어 들며 말했다. 큰맘 먹고 들어온 학교 앞 돼지갈빗집에도 손님은 없었다. 사장은 카운터에 앉아 멀거니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네가 그때 친구도 한 명 없었잖아?”

“그게 전부야…?”

진만의 말에 유정이 “그럼 뭐가 더 있어?”라고 되물었다. 

“그럼 지금은? 지금도… 그래 보여?”

진만이 그렇게 묻자 유정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지금은 뭐… 나도 불쌍한 처지니까.”

유정은 며칠 전부터 인강으로 다시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거기에 썼다고 했다. 집에서 그걸 혼자 듣고 있자니, 자기가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야야, 밥이나 먹자. 그런 얘기 해서 뭐 하니?”

유정은 말을 끊었다.

진만은 유정과 헤어져 다시 버스를 타고 광역시로 돌아오면서 계속 유정의 말을 떠올렸다. 불쌍해 보여서, 불쌍해 보여서…. 그러면서도 한편 진만은 계속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왜 문자가 안 오는 거지? 긴급재난지원금을 쓰면 문자가 오는데… 왜 돼지갈빗집에서 쓴 6만원은 안 오는 거지? 이게 혹시 거주지 밖에서 써서 그런 건가? 그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유정의 말이 떠오르고… 그러면서도 또 휴대폰을 바라보고…. 진만은 둘 중 뭐가 더 서글픈지 알 수 없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antig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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