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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다 보면요, 진짜 이상한 사장들, 황당한 점장들 많이 만나잖아요.”

“그야, 그렇죠…. 한데 어디 그게 사장들만 그런가요? 같이 일하는 알바 중에도 이상한 애들이 진짜 많아서….”

“진만씨는 아직… 괜찮죠?”

“네? 뭐가요?”

“아니, 우리 사장한테 이상한 말 안 들었냐고요?” “이상한 말이요? 아니오, 저는 아직….”

“그런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기 나중에 하면 안될까요?”

“잠깐이면 돼요. 이게 진짜 중요한 이야기거든요.”

“제가 버스를 놓치면 걸어가야 하는데….”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 사장이 겉만 보면 진짜 멀쩡하잖아요. 숯불갈비집 사장 같지 않고 카운터에 와이셔츠 입고 앉아서 책이나 보고…. 나는요, 맨 처음에 우리 사장이 부모 잘 만나서 가게 물려받은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데, 알고 보니까 우리 사장이 원래 절에 들어가서 고시 공부하던 사람이래요. 몇 년 그렇게 하다가 포기하고 내려와서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나 뭐라나. 암튼 그 돈으로 카페 운영하다가 거기서도 또 돈을 더 벌어서 차린 게 지금 이 숯불갈비집이래요.”

“아니, 진짜 제가 막차를 놓치면….”

“진만씨도 우리 사장이 홀서빙 도와주는 거 한 번도 못 봤죠? 우리 사장은요, 아무리 바빠도 카운터에서 일어나질 않아요. 바쁠 땐 알바들이 불판도 닦다가 다시 그 손으로 반찬도 내가고, 테이블도 정리하고, 그래야 해요. 진만씨도 이제 보름 가까이 되었으니까 알 거 아니에요? 우리 사장은 알바가 해야 할 일, 사장이 해야 할 일, 딱딱 구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손님이 기분 나빠하든 말든 아닌 건 때려죽여도 아닌 사람인 거죠.”

“저기 그러면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면서 얘기할까요? 제가 진짜 택시비가 없어서요.”

“사실, 전 여기 딱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둘 생각이었거든요. 진만씨도 해봐서 알겠지만 이 알바가 이게 장난이 아니잖아요. 숯불도 만들고 기름때도 벗겨내고 서빙도 하고…. 말이 알바지 무슨 조선시대 노비 같잖아요. 그러고 시급 천 원 더 얹어 받는 건데, 여름 되니까 진짜 못 해먹겠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월급만 받으면 그다음 날 바로 때려치우려고 했는데 한 이십 일쯤 됐을 때던가, 사장이 저만 따로 부르더라고요.”

“저기, 걸음 좀 빨리해주셨으면….”

“손님들 뜸해졌을 때 저를 룸으로 부르더니, 대뜸 가족 중에 제 명까지 못 살고 일찍 돌아가신 분이 없냐고 묻는 거예요.”

“사장님이요? 상수씨한테요?”

“네. 그러니까 좀 이상하잖아요. 그전까지는 뭐해라, 뭐해라, 지시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 가족 얘기를 묻고, 그것도 일찍 죽은 사람이 있냐 없냐, 물으니까….”

“거, 왜 그랬을까요?”

“기분이 좀 더럽더라고요. 자기가 사장이면 사장이지, 알바한테 별소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죠. 우리 집은 아버지가 좀 편찮으셔서 그렇지 부모님 두 분 다 멀쩡하게 살아 계시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여든 넘어서까지 사셨고…. 그래서 그냥 대답도 안 하고 멍하니 바라만 봤더니 사장이 더 이상한 말을 하는 거예요.”

“어떤…?”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옛날부터 귀신을 좀 본다는 거예요. 사람들 어깨에 올라타 있는 귀신을. 사실 자기가 절에 들어간 것도 고시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그거 좀 안 보이게 해달라고 부처님한테 빌러 갔다는 거예요. 한데 절에 있으면서도 계속 신도들 어깨에 붙어 있는 귀신들이 보이니까 그냥 그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거예요. 자기가 카운터에만 앉아 있는 이유도 손님들한테 있는 귀신이 자기한테 넘어올까 봐 그러는 건데…. 사장이 그 귀신이 내 어깨에도 한 명 있다는 거예요. 중년 남자 귀신이….”

“네? 아니, 그게 무슨….”

“저도 처음엔 그냥 사장이 놀리려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괜히 심심하니까 저러나, 하고 말았죠. 한데, 그 말이 자꾸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거예요. 일할 때도 괜히 어깨가 무거워지는 거 같고. 그래서 막 들고 가던 숯도 쏟을 뻔하고. 그리고 더 결정적인 건 우리 외삼촌 중 한 분이 아파트 공사장 비계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한 십 년 전 어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해낸 거예요. 그러니까 더 죽겠는 거예요.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거울도 못 보겠고.”

“어어, 그럼 진짜… 우리 사장이….”

“제가 그렇게 일주일간 계속 잠도 못 자고 고생하다가 우리 사장한테 사정했다는 거 아니에요. 정말 제 어깨에 누가 있는 게 맞냐고? 그럼 이걸 어찌해야 하냐고?”

“그랬더니 사장이, 아니, 사장님이 뭐래요?”

“사장이… 그게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거예요. 자기가 저를 보면서 계속 기도를 드릴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눈앞에 있으라고. 어깨 위 귀신 때문에 네 인생이 지금까지 제대로 풀리지 않은 거라고.”

“좀 무시무시하네요. 그런 얘기는 진짜 어디 영화에나 나오는 건지 알았는데….”

“그래서 제가 여기서 일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잖아요.”

“그래, 좀… 괜찮아졌어요? 사장이 진짜 기도도 해주고?”

“기도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근데 진만씨, 진짜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더, 더 있어요?”

“우리 갈비집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두 분도 다 어깨에 귀신이 있다는 거예요. 사장이 그 아주머니들한테도 그렇게 말해서 아주머니들도 벌써 이 년 넘게 여기서만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만두지도 못하고.”

“네?”

“이게 뭘 뜻하는지 아시겠죠?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장이 많다니까요. 그러니까 진만씨도 조심하라고요.”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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