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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정용이…? 너, 정용이 맞지?”

그녀가 얼굴을 좀 더 앞쪽으로 내밀면서 물었다. 정용은 어떡하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고개를 숙여보았지만, 더는 피하긴 어려워 보였다. 손님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그녀 주위로 중년 여자 두 명이 다가와 참견했다. 그녀는 그녀들을 이모라고 불렀다.

“응. 대학 동기를 여기서 만나네.”

“그래? 그럼 특별히 큰 놈으로 주시겠네. 호호호.”

똑같은 선글라스를 쓴 중년 여자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큰소리로 웃었다. 정용은 그 앞에서 정말이지… 오징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말없이 정용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오징어는 타닥, 소리를 내며 동그랗게 제 몸을 말기 시작했다.

*

단군 이래 최장 연휴라더니 그만큼 아르바이트 자리도 많았다. 인터넷 알바 사이트에는 마트 판매원에서부터 택배 배송사원, 청과물 상하차 아르바이트, 심지어는 송편 포장 사원까지 그야말로 일자리가 알밤처럼 쏟아졌다. 정용과 진만은 그중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사원 아르바이트를 골랐다.

“딱 이거네. 시급 만 원!”

진만이 고른 고속도로 휴게소는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 방향 고창 고인돌 휴게소였다.

“여긴 내가 몇 번 가봤는데 차도 별로 안 밀리는 곳이야. 완전 꿀 알바라는 뜻이지.”

“한데 시급을 왜 이렇게나 많이 주지?”

정용이 같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갸우뚱거렸다.

“그건 뭐…. 명절이니까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뜻이겠지.”

진만은 그렇게 짐작했지만, 그런 건 <반지의 제왕> 속 호빗 마을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근무 첫날부터 깨닫고 말았다. 직원 전용 미니버스를 한 시간 가까이 타고 도착한 휴게소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자동차가, 관광버스가, 단군 할아버지 수염처럼 길게 꼬리를 물고 휴게소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애초 진만과 정용은 둘이 함께 맥반석 오징어구이 코너에 배치되었지만, 델리만쥬 코너 아르바이트생이 잠적하는 바람에 진만은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델리만쥬 코너는 그래도 의자에 앉을 수 있었지만, 맥반석 오징어코너는 그렇지 못했다. 양손에 기다란 집게를 든 채 계속 일어서서 오징어가 타지 않게, 너무 말리지 않게 뒤집어주고 펴주어야 했다.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면 정용은 집게를 치우고 목장갑 세 장을 겹쳐 낀 손으로 오징어를 구웠다. 그래도 뜨겁지 않았다.

“너희들 휴게소에서 제일 긴장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

휴게소 2층에 있는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최 주임이라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

진만과 정용이 멀뚱멀뚱 말없이 바라보자, 그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관광버스. 관광버스가 들어올 때만 조심하면 돼.”

진만이 예의상 그건 왜 그렇죠, 물으니 바로 이런 답이 돌아왔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취해 있거든. 여기가 휴게소인지, 산 정상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야.”

실제로 정용은 연휴 셋째 날엔가, 관광버스에서 내린 술 취한 할아버지 한 분한테 말도 안 되는 호통을 듣기도 했다. 정용의 오징어코너 옆에 한참 동안 뒷짐을 쥔 채 서 있던 할아버지는 손가락질까지 해대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아! 너, 이거 맥반석 아니고 고인돌이지! 이놈아, 천벌을 받아! 어디 오징어를 구울 데가 없어서 고인돌에다가 구워!”

아이 씨…. 정용은 그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 저 추석인데 지금 여기서 하루 아홉 시간씩 꼬박 서서 오징어만 굽고 있거든요. 어떤 아주머니들은 오징어를 구워주면 오징어가 작아졌다고, 바꿔치기한 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해요. 근데 제가 무슨 티라노사우루스입니까? 왜 제가 고인돌에다가 오징어를 구워요? 정용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묵묵히 오징어만 구웠다.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든 말든 사람들은 계속 그 앞에 줄을 섰기 때문이다.

그런 나날 중에 대학 시절 첫사랑까지 만난 것이었다. 주위에 고인돌이 있으면 그 아래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 정용의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

밤 열 시, 다시 광역시로 나가는 퇴근 미니버스에 탔을 때, 진만이 물었다.

“아까 걔…. 선아 맞지? 너랑 잠깐 사귀었던 황선아.”

정용은 말없이 눈을 감은 채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진만에게선 바닐라 향이 났다. 정용 자신에게선 오징어 냄새가 났다. 정용은 오징어처럼 둥글게 몸이 말리는 것 같았다.

“걔, 많이 이뻐졌더라. 아까 보니까 둘이 무슨 말도 하는 거 같던데. 걔가 뭐래?”

반숙으로 구워 달라고 하더라. 이게 무슨 맥반석 달걀도 아니고. 한데도 정용은 그녀에게 ‘어, 그래’라고 짧게 대답했다. 정용은 그 얘기를 진만에겐 하지 않았다. 5년 만에 만난 옛 연인 사이의 대화치곤 어딘지 어색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녀를 만날 기회가 또 올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그녀는 옛 애인을 떠올리면 오징어부터 먼저 생각나겠지. 반숙 오징어. 그 생각이 정용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저기 아까 최 주임이 그러는데, 연휴 끝나고도 계속 일하려면 미리 말해달라고 하더라. 난, 이거 괜찮은데. 델리만쥬. 약간 프랑스 느낌 나지 않니?”

“너나 해.”

정용은 짧게 말하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미니버스 창문 밖으로 추석을 막 보낸 보름달이 쓸쓸하게 떠 있었다. 단군 이래 최장 연휴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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