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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인지신경과 의사인 최민철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환자 서연수를 바라보았다. 서연수는 시술용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

서연수는 어깨 근육이 팽팽해질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민철에게 그 긴장은 오히려 좋은 신호였다. 환자의 의식이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서연수는 심호흡을 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환자께서는 지금 반인공지능 결합 시술을 하기 위해 미래병원 신경외과 수술실에 와 계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시면 그렇다고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서연수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저는 반인공지능 결합 시술을 하기 위해 와 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반인공지능 결합 시술을 받으면 부작용으로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알고 계십니까?”

“부작용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나노머신들이 환자분 머릿속으로 흘러들어갈 겁니다. 이 머신들은 주로 단기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를 보조하게 됩니다. 기억은 그 자체로 우리 의식의 일부를 담당하기 때문에 동영상을 촬영하듯 기계적으로 기록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늘 기억을 분석하고 가려내는 인공지능이 필요하죠. 나노머신이 자리를 잡는 동안 환자분은 자신의 옛 기억을 타인의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그 후에도 의식의 통일성을 획득하려면 적응이 필요하고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서연수는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끔찍한 충격이 몰려오지 않을까 겁을 먹었다. 하지만 고통스럽다해도 견뎌야 할 과정이었다. 마흔셋에 알코올성 치매가 발병한 뒤로 서연수라는 존재는 말 그대로 무너졌다. 잦은 건망증으로 시작해 제 집조차 못 찾아가는 지경에 이르는 동안 연수는 일자리를 잃었고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졌다. 가끔씩 제정신이 돌아올 때면 그사이에 벌어진 일들 때문에 좌절하고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의사의 말대로 나노머신들이 머릿속에서 제자리를 잡아가는 중인지 연수는 다시 돌이키기 싫은 옛 모습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한 번 더 경험했다.

눈은 언제 뜨면 될까. 내 머릿속에 들어온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걸까? 의사가 따로 신호할 때까지 이대로 있어야 하는 걸까? 혹시 걱정하던 대로 부작용이 생겨서 식물인간이라도 되는 건 아닐까? 그동안 시간이 흐르고 흘렀지만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로 안락사에 이르는 건 아닐까?

연수가 온갖 불길한 상황을 상상하고 있을 때 무언가 부드러운 물체가 뺨을 두드렸다. 연수는 눈을 떴다. 간호사가 얼굴에 잔뜩 흐른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최민철이 연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뇌파 측정과 피드백 확인까지 전부 끝났습니다. 반인공지능 결합 시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불시에 퇴행이 찾아오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사는 시술이 성공이라고 했지만 연수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두뇌에 나노머신이 삽입되었다는 사실, 자신이 병원 수술실에 있다는 사실이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당분간 냉정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실 겁니다. 무서워하실 것 없습니다. 그거야말로 결합 시술이 성공했다는 증거니까요. 앞으로 인공지능을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통합훈련을 받게 될 겁니다. 통합훈련이 성공적으로 끝나려면 인생의 목표를 하나 정하는 게 좋은데요. 혹시 계획하신 것 있습니까?”

연수는 치매가 발병한 이후 자신을 떠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두뇌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해도 과거는 이미 삭제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연수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 날부터 세워두었던 목표를 말했다.

“화성 개척지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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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구성하는 환경이 달라지고,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간의 장단점과 한계를 직시하는 계기가 늘어나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때를 같이해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과학계와 산업계를 두루 휘젓는 중이다. 인공지능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공포를 눈앞에 끌어내었다. 우리가 만든 창작품에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가깝게는 일자리와 노동력부터 멀게는 인간 고유의 영역 전부를 인공지능이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첨단 사업을 이끄는 유명 CEO들도 인공지능을 논할 때면 두 파로 나뉜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측과 낙관론을 펴는 측이다. 물론 양측 모두 자신이 벌이는 사업에 이익이 되는 주장을 내세우는 게 현실일 것이다. 이 중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대표하는 일론 머스크는 경고파에 속한다. 그는 ‘인공지능에게 밀려나지 않으려면 인간이 인공지능과 결합해 공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본인의 사업적인 비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진지하게 고민해 볼 여지가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과학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태어난 학문이고, 기술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탄생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에도 인간이 불변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없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의식을 확장시켜주는 건 물론이고 의식이 담긴 그릇, 즉 육체를 보완하고 확장시키는 역할까지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전적인 의미의 인간 본인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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