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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정동칼럼]어떤 애도

opinionX 2019. 2. 1. 14:54

어떤 삶이 있다. 거대한 폭력이 그 삶을 평범할 수 없게 만들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오랫동안 수치와 침묵 속에 살아야 했다. 세월이 바뀌어 그 삶은 정의를 향한 용기를 상징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피해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동시에 개인적 삶을 넘어서는 추상적 의미 속으로 수렴되면서, 공적 담론 속에 있으되 그 언어를 빗나가게 됐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 영면하셨습니다. 흰 저고리를 입고 뭉게구름 가득한 열네 살 고향 언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청와대가 게시한 추모의 글이다. 청와대뿐 아니라 김복동님의 소천 소식을 보도하는 언론은 하나같이 그분을 투사가 된 ‘할머니’로 묘사하면서도 양산 출신의 순박한 열네 살 소녀를 소환한다.

일본군 위안소로 징발되어 가는 소녀의 이미지는 제국주의의 침략, 군국주의적 폭력에 주권을 빼앗겼던 국가의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역사와 ‘진실’의 문제에 대한 우리 국가적 자의식의 한 측면을 가리킨다. 주권을 침탈당한 국가를 연약한 ‘소녀’로 표상하는 수사는 피해와 박탈, 취약함과 종속을 여성적 속성으로 못 박음으로써, 국가의 본래적 성별을 ‘남성’으로 설정하면서도 그 국가의 실패는 여성의 이미지로 환치하는 이념적 장치이다. 또 이 이미지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모종의 전제를 집약하여 일반화한다. 피해, 상처 이전의 어떤 완전한 순수에 대한 향수 속에서 피해자를 국가의 이미지와 등치하여 숭고하게 만드는 이 수사는, 어쩌면 국가와 역사를 내세워 개인 김복동의 존재를 지우는 동시에 그분이 평생 입은 피해와 고통에 연루된 국가의 실패를 간과하는 것이다.

김복동님이 66세에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피해 사실을 공개한 1992년 이후 위안부 피해 문제에 헌신한 것은, 오랜 세월 상처를 품고 자신의 감정과 감각에서 유리된 채로 살아야 했던 그분의 생존의 선택이자 또 다른 희생이었을 터이다. 생전에 그분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맨날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 테레비고 신문이고 입이 아프도록 죽도록 말해 놓으면 그 말은 다 어디 가삐고 한두 마디 나오고 그저 ‘김복동 위안부’ ‘위안부 김복동 할매’ … 이기 머, (내가) 위안부라고 선전하는 거밖에 더 되나 말이다. 안 그래?”(‘이진순의 열림’, 한겨레신문 2014년 2월21일자) ‘위안부 할머니’라는 호명 속에서 소략하게 평면화된 자신의 공적 존재가 자신의 힘겨운 발화와 처절히 불일치한다는 이 암시는, 국가의 역사적 상흔으로 상징화됨으로써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상처에 대한 고백이다.

위안부 피해자와 국가의 관계는 그야말로 껄끄러운 것이다. 국가는 그분들의 평범한 일상을 애당초 지켜주지 못했으며, 해방 후 수십년 동안이나 그분들의 피해에 침묵했다. 그분들을 손상된 국가 위상의 표상으로 삼으면서도 일본과의 외교적, 정치적 교섭에서 상징적 정의의 제스처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위안부’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를 거의 조장하다시피 직접 관리하며 그들의 인권을 외면했고,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폭력과 성범죄에 대해 아직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검찰 등 국가기관들의 성불평등, 성폭력적 문화에 대한 개혁의 요구도 거세다. 연로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죽는 날까지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불가역적” 합의 따위에 동의하면서 국가가 실패를 거듭했다는 증거이다. 순박한 소녀와 투사가 된 할머니. 이 상투화된 두 기호로 김복동님을 기리는 애도는 그래서 한없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고단한 여정을 마친 김복동님의 장례가 오늘이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에 대해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썼다. “심지어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살아남고, 그러므로 살아남기를 원해야 한다. 이야기하기 위해서. 살아 증언하기 위해서.” 살아남았던 사람의 죽음은, 언어에 저항하는 역사를 몸에 새기고 있었던 사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의 상실이다. 이 상실을 어떻게 애도해야 좋단 말인가. 남은 이들의 몫은 그분이 요구했던 사과를 받아내는 일만이 아니라, 그분이 살아 견딘 삶과 세계가 망각의 지평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게 하는 일이다. 치유는 가능하지 않으며, 인간적 삶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존재를 비인간화한 폭력을 보상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일, 즉 그 피해의 치유 불가능성을 상기하는 일, 돌이킬 수 없는 국가의 실패를 복기하는 일이다. 그 불가능과 그 실패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런 폭력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고 우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지키는 유일한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운동가, 인권운동가 김복동님, 그리고 같은 날 소천하신 이씨 성의 다른 한 분의 명복을 삼가 기원한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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