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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화장실만큼 평등한 곳도 없다. 생리현상은 높낮이가 없는 일이니, 이를 해결하러 가는 길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금방 멱살을 잡고 다툰 상대라도 화장실 가는 길은 내어준다. 수만명을 호령하는 장군도 지휘봉을 내려놓고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내려야 하는 곳이다. 내가 그곳에 있다고 해서 다른 이들을 물리칠 수 없는 공간이다.
수년 전 몸소 확인한 적도 있다. 긴박한 국제회의에서 ‘자연의 부름’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고 화장실로 내달린 뒤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내 옆에 유엔 사무총장이 서 있었다. 은밀한 곳이니 세세하게 밝힐 수는 없으나, 단언컨대, 우리가 사용한 하얀색 변기와 우리의 엉거주춤한 사용 자세에는 어떠한 차별도 허용치 않는 ‘순수한’ 평등뿐이었다. 그리고 화장실 접근권은 위생권의 일부로서 유엔이 인정한 보편적 권리다. 그가 직접 의사봉을 두들겨 국제적으로 확보한 권리다.
하지만 세상의 ‘보편적’ 권리라고 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보편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힘 좋은 이들은 한껏 누리고, 조금 궁색한 처지에 있는 이들은 사투를 벌여야 한다. 태어나면서 얻는 권리라는데, 수십년을 살고도 알지 못하고 얻지 못한다. ‘태생적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화장실도 예외 없다. 지난 1년여 동안 우리의 화장실 풍경이 특히 그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화장실로 가는 길은 여전히 끊겨 있다. 이달에 연이어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난 평택 삼성전자 건설 현장에서는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작업이 이어진다. 무려 1만5000명이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낮밤없이 일하는 곳이다. 일을 전투처럼 하는 곳에 또 다른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화장실이다. 청결 문제는 제쳐두고, 무엇보다 숫자가 태부족이다. 휴식시간에 사람이 몰려들면 20~30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시설을 늘릴 생각은 않고, 화장실 벽에 “3분 이상 적발 시 XX”라고 적어 두었다.
어떤 이에게 화장실은 노동 대상이자 휴식공간이다. 김포공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매일 11시간 동안 변기와 바닥을 닦아낸다. 쉴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휴식은 노동현장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들이 쉴 수 있는 곳은 화장실 내부의 물품보관칸이다. 남들이 장을 비워내는 곳에서 그들은 간단한 먹거리로 장을 채운다. 노동자들이 정규직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자, 사측은 이 ‘휴식공간’을 비워달라고 했다. 물품 보관이라는 원래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화장실은 때로 협박수단이다. 현대식 화장실을 구비한 대기업의 어느 계열사는 젊은 직원이 희망퇴직을 ‘희망’하지 않자 화장실에 못 가게 했다. 그 직원이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면 경고장이 즉각 발부되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을 볼모 삼아 극강의 모욕감을 심어주고자 함이다. 생리적 문제도 감당 못하는 처지이니 알아서 포기하라는 뜻이다. 논란이 일자 그 기업은 화장실 사용을 ‘허가제’로 바꾸었다. ‘허가된’ 오줌보는 ‘금지된’ 오줌보보다 덜 모욕적인가.
이 지경에 이르면, 화장실은 보복의 무기가 된다. 어느 제약회사는 직원을 해고했다가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 직원이 복귀하자, 그에게 유치찬란한 보복을 한다. 그 핵심은 ‘화장실 보복’이다. 출입구에서 혼자 벽을 보며 ‘벽면수행’을 할 수 있는 곳에 책상을 배치하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는 반드시 보고 및 허가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물 건너에서 온 노동자의 처지는 더 궁박하다. 한국 농장에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에 산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고, 화장실은 물론 없다.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고용주는 단지 강 주변을 손짓으로 가리킬 뿐이다. 안산 반월시화공단에서도 화장실 통제가 빈번하여 노동자들이 느끼는 모욕감이 심각하다. 일부는 그런 모욕감을 피하려고 아예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육체적 건강을 포기하더라도 인간의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것이다.
일터 밖의 화장실 풍경도 을씨년스럽다. 올 5월에 있었던 서초동 공용 화장실 살인사건은 화장실 접근권에도 남녀가 ‘유별’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남녀에게 같이 열려 있는 공동화장실에서 여성은 긴장해야 한다. 화장실은 육신의 배설뿐만 아니라 때로는 온갖 욕망, 편견, 그리고 폭력을 쏟아내는 곳이다.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 힘깨나 쓰는 이들에 끌려가는 곳도 화장실이었고, 그걸 보고도 아무 소리 못하고 조용히 볼일만 보고 나오는 비겁의 공간도 화장실이었다.
따라서 여차하면 힘과 권력이 문을 박차고 들어올 수 있는 곳이 화장실이다. 일종의 ‘화장실의 정치학’인데, 올해 우리는 그 완성판을 보았다.
국가권력을 가장 일관된 방식으로 사유화한 대통령은 화장실도 사유화했다. 천하고 무식한 ‘개·돼지’ 같은 이들과 어찌 변기를 같이 나눌 것인가. 그래서 그녀는 ‘온전히 나의 것’인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관저에서 나오질 않았다. 대통령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는 사익 추구를 위해 불가피하게 바깥으로 나가야 할 때면, 방문 장소의 공동화장실 변기를 통째로 바꾸었다. 번듯한 시장실 변기도 뜯어냈고, 병사들이 그녀를 위해 팔목이 부서져라 닦았을 변기도 간단히 교체되었다. ‘화장실은 나만의 것’이라는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그녀는 간단하게 정상회담장을 떠나는 기개를 보였다.
가장 평등해야 할 곳에서 그렇지 못할 때 그 사회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 수많은 이들이 화장실에 갈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나라의 대통령은 자신의 ‘화장실 접근권’을 마음껏 누리고 있고, 자신의 화장실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본연의 일을 방치했다. 할 일은 하지 않고 권력만 누렸으니, 그녀는 21세기 최초의 ‘공주’, 그것도 그 완성태인 ‘변기 공주’다.
이제 새해다. 화장실 불평등을 악화시킨 ‘공주’는 속히 물러나서, 시민들의 묵은 숙변이 제거되길 바란다. 만인에게 화장실을 평등하게 허하여 시원한 물소리가 넘치는 2017년을 기다린다. 소박한 바람도 하나 보탠다. 모쪼록 새해에는 그녀에게 공동화장실의 ‘신세계’를 체험할 기회가 주어지길, 그리고 그곳에서 내내 평온하길!
이상헌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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