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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중재원 원장님을 비롯한 직원 여러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의료사고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막상 당해보니 참으로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어서 너무 가슴이 아파 살아가기조차 힘겹습니다. 그러나 중재원을 믿고 신뢰하다보니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며 이제 떠나간 사람도 덜 억울하리라 생각됩니다.”

소장암 수술 후 아내를 잃고 의료중재원에 조정신청을 낸 50대 남자의 편지다. 유가족의 조정신청에 다행히 병원 측이 동의하면서 조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고, 절차 진행 중 양측이 원만히 합의해서 마무리된 사건이다.

조정은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새롭고 신선한 분쟁 해결절차이다. 짧은 시간 고속 성장을 거치면서 사회 각 분야에 갈등이 만연한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분쟁을 둘러싼 갈등은 가족의 생명이나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연계된 것이기에 더욱 첨예하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유족 측은 병원 내 난동과 의료인에 대한 폭력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바라보는 의료인 역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으로, 무기력과 상심에 빠져 방어적 자세를 취하거나 적개심을 나타낸다. 이 같은 양측의 입장이 맞서 끝내 형사고소나 민사재판으로 이어질 경우 환자와 의료인 모두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상호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고 지칠 대로 지치게 된다.

故 신해철. 사진 KAC엔터테인먼트

환자와 의료인의 상처만 커져가던 가운데 2012년 4월부터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시행됐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의료중재원이 소송절차 밖에서 사실조사와 감정을 통해 의료사고 발생 과정에 의료 과오가 있었는지, 환자의 좋지 않은 결과가 의료 과오로 인해 생긴 것인지를 밝힌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대체적 분쟁 해결절차’로서 조정과정에서 양 당사자에게 손해배상 등 다양한 분쟁 해결방안을 제시한 뒤 각자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 방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절차가 의료인과 법조인 등 전문가에 의해 환자와 의료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상담과 설명을 통해 진행된다.

특히 2016년 11월30일부터는 일명 ‘신해철법’이라 불리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되고 있다. 개정법에 의해 조정신청의 대상인 의료사고가 사망과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제1급(자폐성장애, 정신장애 제외)에 해당하는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 없이 즉시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소송이나 다른 분쟁조정제도(층간소음 분쟁, 언론 분쟁, 건설 분쟁 등)와는 달리 그간 의료분쟁만 유일하게 피신청인의 동의가 있어야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었다. 의료중재원 출범 이후 의료분쟁 조정절차의 자동 개시를 요구하는 환자들의 바람이 이번 법률 개정으로 일부나마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간 조정절차 자동 개시를 둘러싸고 환자 측과 의료인 측의 논쟁이 많았다. 그런 만큼 개정법률의 시행에 들어간 지금까지도 환자 측에서는 자동 개시의 대상이 적어 실효성이 적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의료인 측은 방어 진료와 중환자 기피가 심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의료중재원은 개원 이후 상담 내용과 각하 사건을 토대로, 업무가 크게 늘어날 것에 대비하고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감정과 조정을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탄생의 축복을 누리고,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 사별이 갑작스럽고 뜻밖일수록 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의료현장에서 뜻밖의 사고를 당한 환자와 의사의 곁에 의료중재원이 있고, 의료중재원은 그들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이번 개정법 시행과 함께 의료중재원 임직원들은 조정과 감정의 전문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기관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자와 의료인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의료중재원이 되기 위해 주어진 소임을 다해 나갈 것을 거듭 다짐한다.

박국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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