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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주말 대구에 있는 ‘김광석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영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 담대하기까지 하다. 그는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버린 것 같다. 그간 국민의힘 내부 갈등의 쟁점은 ‘당대표의 품행이 문제인가, 아니면 당 주류의 독선이 문제인가?’라는 것이었다. 이준석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와 같은 그간의 쟁론을 다른 국면으로 바꾸려는 것 같았다. 그는 지루해지고 점점 더 민망해지고 있는 국민의힘 내부 권력투쟁을 ‘가치’투쟁으로 끌어올려 윤석열 대통령과 맞서고자 한다.

그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를 비롯한 각종 연설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자유라는 가치를 환기하며 그것을 싸움의 고리로 걸고 나섰다. 그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라고 못을 박고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방송금지곡이었으며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새끼’라는 표현이 있다고 방송금지 처분을 당했다는 기억을 소환했다. 그리고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자신은 그 자유를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향유하기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덧붙여 그는 이런 가치 실현을 위해 보수의 변화, 국민의힘 내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준석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 내부 갈등이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벌거벗은 권력투쟁이 아니라 보수정당이 생존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가치와 노선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국민의힘이 직면하고 있는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사실 박근혜의 탄핵으로 완전히 무너졌던 보수정당은 아직 회복의 디딤돌도 만들지 못한 상태다. 강력한 정권교체 흐름에 편승하여 운 좋게 정권을 잡았을 뿐 정당을 제대로 쇄신하지도 정치세력을 제대로 정비하지도 않았다. 정권교체가 보수정당의 실력을 가늠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힘의 정체성은 잡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당을 구성하고 있는 세력은 변화에 무딘, 낡고 처진 사람들이 태반이다. 정당의 운영 방법도 구태의연하다. 젊은 정치를 매번 외치고 있으나 새로운 가치와 행태를 찾기보다는 선거용으로 소비하고나 있을 뿐이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가 된 것은 새로운 흐름으로 가는 물꼬였다. 이준석을 통하여 국민의힘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고 그런 기대를 기초로 젊은층이 대거 국민의힘 지지기반을 형성했다. 새로운 세력, 새로운 가치, 새로운 문화가 국민의힘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보수정당은 민주화 이후 끊임없는 이종교배(異種交配)를 통해 정치적 활로를 찾아왔다. 신군부의 장식품이던 민정당이 민주화의 물결 앞에 위기를 맞았을 때 김영삼 세력이 가세하여 보수정당의 명맥은 이어졌다. 그 후 민중당계 진보세력의 합류로 보수정당은 잃어가던 기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였고, 보수정당이 지리멸렬하게 되었을 때 뉴라이트 세력이 합류하여 중심을 찾았다. 과거 보수정당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의힘은 외부로부터 힘을 받아서 회복탄력성을 다시 만들어야 할 절실한 상황에 있었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이준석이 만들고 있었다.

이준석은 ‘비빕밥론’으로 국민의힘을 혁신하자고 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여러 가지를 다 녹여 하나로 만드는 용광로가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는 비빔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탁견이었다. 그런데 그의 비빔밥은 실패다. 밥알은 곤두서고 나물과 고추장은 그릇 바깥으로 튀어 나가며 비빔밥 그릇은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을 적절히 어우러지게 하는 정치적 지도력은 생기지 않았다. 비빔밥은커녕 국민의힘 주류는 이준석을 용광로 속으로 던져 흔적조차 없애려 하고 있다. 사법부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비빔밥 그릇은 이미 엎어졌다.

보수정당의 혁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희망의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그 일은 일차적으로 윤 대통령의 몫이었다. 윤 대통령은 보수정당을 살릴 보수혁신의 총아였다. 여의도와 아무 인연이 없는 검찰총장 출신 비정치인을 통하여 지지자들은 보수정당의 혁신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기대는 없어졌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변화시키기는커녕 당의 기성 정치 세력에 포획되어 새로운 그 무엇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내부 갈등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과 이준석 중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이종교배를 통한 진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준석이 내건 ‘비빔밥’의 실패가 분명해진 추석 마당에 던져진 질문이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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