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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정동칼럼

헛다리 짚기

opinionX 2022. 8. 26. 10:27

취임 100일 즈음에 실시된 직무평가 여론조사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30% 안팎의 지지를 받았다. 대통령의 인사·자질·태도 등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데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통령실의 인식은 다소 다른 듯하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홍보나 소통이 부족했다든가, 구체적 정책들을 추진하기 시작하면 달라질 것이라든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이야기만 들린다.

그런데 추진하겠다는 정책들을 보면 걱정만 더 든다. 또 국민만 보고 가겠다면서, 피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성과에만 집중하고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는 뒷전으로 미룰 수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한, 탄소중립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이대로 어영부영 2027년을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를 수 있다. 진정 미래와 청년을 생각한다면,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정책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는 것은 실제로 제시된 정책들이 없어서도 또 제대로 홍보가 안 되어서도 아니다. 제시된 대부분 정책이 MB시대 실패한 정책을 조금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 우리의 당면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닦는 방안이라는 공감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벌과 부자 감세 및 백화점식 친재벌 규제완화라는 폭주를 시작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윤 대통령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등 재벌 총수에 대해 8·15 광복절 특별사면 및 복권을 단행했다. 16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부담을 덜어주는 합리적(?) 제도 운용을 담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했다. 앞서 7월21일 기획재정부의 2022년 세제개편안에는 재벌과 부자 감세 계획이 촘촘히 담겨 있었다. 

재벌 총수 사면·복권으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근거가 없음을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재벌 총수의 사면 및 복권이 기업 투자와 경제 활성화를 가져온다는 황당한 주장의 두 번째 연결고리인 기업 투자와 경제 활성화에 대한 생각도 중화학공업 중심의 공업화라는 개도기 시절 이야기이다. 1990년대 이미 ‘잃어버린 30년’에 들어간 일본은 이때도 미국보다 GDP 대비 훨씬 더 높은 투자를 지속했지만 경제 성장 엔진은 꺼지고 말았다. 1990년대 미국과 선진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것은 슘페터적인 제품과 기술 혁신이었고, 이런 혁신은 주로 잠재적 경쟁 기업의 진입으로 일어났다. 즉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고, 혁신에 대한 대가가 확실히 보장되는 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슘페터가 말한 혁신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혁신경제·포용성장·탄소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 제조업에서 진입과 퇴출 장벽을 낮추고, 소유지배구조의 유연성을 확보해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전환을 유인해야 한다. 현 재벌체제에서 중소기업을 지원정책으로 연명시키는 것은 혁신을 위해서도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도 충분하지 않음은 이미 경험으로 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와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를 막아 재산권을 보장하는 것이 시장경제체제를 똑바로 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와 세제 개편안은,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고취하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더 악화시키고, 세습을 제도화할 수 있는 독소조항으로 가득하다. 동일인의 친족 범위 축소와 부당지원 적용 대상 축소로 사익편취 규제의 사각지대를 넓히고, 조사과정에서 기업의 이의제기 절차 신설로 인해 강제조사권이 없는 공정위의 조사를 더 무력화시키고, 사익편취 총수일가에 대한 형사고발이 없어질 수 있다. 결국 사익편취를 위한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유명무실화될 것이다.

나아가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더욱 장려하고, 재벌 세습을 제도화할 수 있는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도 공언하고 있다. 이에 더해 유산증여세 도입,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 배당수익에 대한 이중과세 경감 그리고 동일인 친족 범위 축소는 세습을 위한 자본 마련과 관계 회사 활용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다.

윤 대통령이 시장을 중시하고 공정과 포용을 강조하는 것이 맞는다면, 정부는 지금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을 어디로 몰아가고 있는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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