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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주년을 맞아 국방부를 출입한 이래 2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예비역 장성들에게 현 정부의 군 정책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 영관급과 장성으로 복무한 터라 역대 정부와 비교해보고자 한 것이다. 반응은 비슷했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군 정책과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군의 목소리가 없다”고 했다. 원인 분석도 거의 같았다. “인재를 넓게 뽑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면 하나회를 척결한 YS 때보다 덜 개혁적이고, 호남인맥에 편중됐다던 DJ 때보다도 유능하지 못하다고 했다. 

지난 2년 문재인 정부는 군 개혁을 힘있게 끌고 오지 못했다.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때는 그나마 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정경두 장관 들어서는 그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파다하다. 국방부는 물론 합동참모본부와 각군을 통틀어도 정부의 군 정책을 소신 있게 펴는 사람은 몇 명 없다. 차라리 “9·19 남북군사합의를 검토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요즘 일부 예비역 장성들로부터 “빨갱이” 소리를 듣는 김진호 재향군인회장(전 합참의장)이 돋보인다. 심지어 일선 부대에서는 터무니없는 논리로 정부의 국방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안보강연을 맡기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군 수뇌부의 무감각과 안이함이 이 정도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튼튼한 안보 위에 평화 정착” 다짐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군 개혁의 핵심인 능력 위주의 탕평 인사, 육·해·공군의 고른 기용도 무위에 그치고 있다. 개혁적인 인사는커녕 육군 중심의, 관행적 인사가 여전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9·19 남북군사합의서를 설명하면서 “합참 장교들이 2주일 동안 밤을 새워가며 합의 문건을 검토했다. 그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데 경악했다. 게다가 남북군사 대화에 수십년간 이를 전담해온 예비역 장성들의 경험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인력의 적재적소 활용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과도한 대응도 있었다.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안보지원사령부)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그 이후 ‘계엄령 문건 사건’ 처리 과정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아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만 검찰 조사에서 속시원히 드러난 게 없다. 문민 통제에 대한 군의 거부 위험성을 지나치게 부풀림으로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군이 일반 정부 부처의 관료들에 앞서 진작에 ‘집권 4년차 모드’로 들어간 것은 이런 결과이다. 공관병에게 갑질한 4성 장군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현 정부에 의해 핍박받았다고 나선 것은 그 일례일 뿐이다. 

외교안보에서는 ‘정책이 70%, 사람은 30%’라는 말이 있다. 정책이 정해지면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기량 차이는 부차적이라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군은 다른 조직과 다르다. 생도 때부터 수십년간 서로를 비교 평가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YS가 하나회 숙군에 성공한 것은 과감하게 밀어붙인 결과이지만, 하나회를 대체한 세력이 능력을 크게 의심받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실패하고 있다. 군처럼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들어맞는 조직은 없다. 군 내부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지휘부를 세우지 않는 한 군 개혁은 불가능하다. 

청와대와 여권 유력자들에게 줄을 대려는 군인들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보수파들은 지난해 육군 참모총장이 청와대 행정관을 단독으로 만났다고 비판했지만, YS 때는 별판을 단 차량들이 청와대 인근 한정식집 골목에 수시로 출몰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도를 걷는 장성들이 없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직접 군 원로들을 만나 그들의 견해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또 DJ가 군축전문가인 임동원 예비역 소장을 호텔에서 만나 밤새워 토론한 끝에 설득한 것을 문 대통령도 적극 본받아야 한다. 

북·미 협상이 조정기에 접어든 만큼 군 정책도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은 2002년 6월 제2차 연평해전 때 윤영하 소령 등 장병 6명이 전사했는데 청와대가 사흘간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 대통령은 물론 국방부 장관마저 전사자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이것이 햇볕정책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다. 문 대통령은 군의 합리적인 목소리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군 개혁에 대한 비전과 평화 정책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군인들에게는 국가와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의 유전자가 있다. 그들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것은 통수권자의 몫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하기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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