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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에 대한 미국 당국자들의 비판은 신랄했다. 지난주 관훈클럽 취재단의 일원으로 도쿄와 오키나와를 도는 동안 주일미국대사관과 주일미군 당국자들로부터 내내 들은 것이 한국의 GSOMIA 종료 결정에 대한 비판이었다. 미 당국자들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처음 접했다. 당국자들은 한국이 GSOMIA를 유지할 것처럼 하다가 막판에 갑자기 돌아서고, 국민을 향해 미국과 협의해온 것처럼 설명한 것에 대해 분개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참모들에 대한 반감이 컸다. 외교부와 국방부, 총리실까지 다 반대하는 사안을 청와대 참모들이 주도해 뒤바꿨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왜 GSOMIA를 종료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미측의 설명은 설득력 있게 와 닿지 않았다. 군 당국자는 한·미·일 3국이 GSOMIA를 통해 입체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매트릭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GSOMIA가 없으면 미국을 매개체로 한 단선적 협력밖에 안된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발사하는 미사일에 대응하는 시간이 늦춰진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GSOMIA 파기가 한·일 간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안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가 14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한·미동맹 만찬’ 행사에서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미 당국자들은 정보 교류의 효용보다는 GSOMIA가 갖는 상징성을 더 중시했다. GSOMIA 파기가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약화하고 있다는 신호를 중국에 준다는 것이다. 미·일 당국자들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기뻐하는 일이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했다. 한국이 한·미·일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으로 본다는 느낌도 들었다. 한마디로 북한과 중국에 이로운 일을 하는 한국의 대응이 한심하고 그런 결정을 한 문 대통령 참모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한국이 GSOMIA 종료 결정을 하면서 기대한, 미국의 일본 압박은 그 기미조차 느끼지 못했다. 일본이 먼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경제 제재를 가한 데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일언반구 설명이 없었다. 일본 외무성, 방위성 관계자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일본을 설득해달라는 한국의 요청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었다.

지난해 말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가 한국 함정을 향해 저공비행한 것에 대한 미군의 판단을 물었다. 미군 브리퍼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냥 한국과 일본이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할 뿐 한·일관계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8월과 10월 독도에 대한 한국군의 방어 훈련 및 초계 활동을 “비생산적”이라고 비판하며 마치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인식하는 듯한 미국의 논평이 오버랩됐다. 전에 없던 일이라고 현지 외교관도 말했다. 지금 미국은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말하지만 명확히 일본의 입장에 서 있다. 

한국인은 수천년 동안 지정학적 숙명을 안고 살아왔다.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한국인은 잘 안다. 최근 100여년의 역사에서 미국은 한국에 언제나 우호적이고 유능한 친구만은 아니었다.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용인했다. 1950년에는 한반도를 애치슨 라인 밖으로 몰아 북한의 남침 의욕을 북돋았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과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은 이런 전행을 상기시킨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임무 변경을 한국의 의사를 묻고 한 적이 없다. 미군 관계자는 주일미군의 3대 원칙 중 첫째가 ‘일본은 일본이 방어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인들도 ‘한국은 한국이 지켜야 한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미국이 진정 한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입시키고자 한다면 선결조건이 있다. 한·일의 과거사와 이후 관계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하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이 왜 미국과 일본의 정책에 편입해야 하는지와 함께 그 전략에 한국의 입장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청와대가 GSOMIA 종료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잘못 읽은 것 같다. GSOMIA를 이대로 종료시키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부는 유연한 자세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주일 미대사관 관계자는 한·일 문제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중재자(mediator)가 아니라 촉매자(catalyst)로 표현했다. 현실적으로 GSOMIA 문제를 풀 방법은 한국과 일본이 한발씩 물러나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려면 미국이 나서 일본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 이 일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지난 1주일간 일본에서 관찰한 결론이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 쪽을 향해서만 촉진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은 GSOMIA 종료 조치에 대한 한국 시민의 지지율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은 할 일을 해야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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