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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잘나가는 정당은 없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다. 유수한 정당일수록 처절한 몰락의 시기를 이겨낸 경험을 갖고 있다. 아픔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듯이, 패배는 정당을 진화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패배 후에 모든 정당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그야말로 와신하고 상담하면서 변하고 또 변해야 더 강한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떤가?

어느 정당이든 위기에 처하면 당내의 일부 세력이나 그룹이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혁신을 요구하고 나선다. 1970년대 초의 ‘40대 기수론’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 노선도 정통 마르크시즘의 실패에 따른 혁신 차원에서 시작됐다. 클린턴 대통령을 낳은 미국 민주당의 DLC, 영국 노동당의 현대화파도 당내 분파에 의한 혁신 성공의 사례들이다. 이런 혁신운동을 주창하는 그룹이 새정치연합 내부에는 없다. 친노-비노 간의 식상한 지분 갈등이나 일부 당내 서클의 당권투쟁 개입은 혁신운동이라기보다 이권운동에 다름 아니다.

맥락상 지금 혁신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하는 세력은 486그룹이다. 그런데 이들은 4·29 참패 이후에도 침묵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2000년 총선부터 출마하기 시작했다. 출마 횟수만 4번이니 이들의 정치이력도 제법 상당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냉정하게 따지면 정치세력으로서 486은 무기력하다. 민주화운동의 보상 차원으로 국회의원직을 얻은 것에 만족할 뿐 복지·평화 시대를 여는 신세력으로서의 소명감, 결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의 티파티(Tea party)처럼 조직화된 당원들이 혁신을 주도하는 길도 난망하다. 새정치연합 당원 정체성의 평균, 즉 호남 출신에 자영업을 하는 평균연령 58세의 당원들이 조직화된 소수로 등장해 당을 혁신할 기동성과 참신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런 경험도 없고, 그들을 이끌 리더도 없다. 이 당의 가장 활동적인 시끄러운 그룹은 인터넷과 SNS에서 활동하는 일부 누리꾼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싸가지 없음, 즉 ‘무싸’ 정신만 북돋울 뿐 당의 건강한 활력을 제고하는 쪽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이들은 천박한 진보, 막말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깡통진보를 육성하고 있다. 요컨대 이들은 당의 역량을 키우기보다 약화시키고 있고,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티어파티(Tear party)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정치추진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새정치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새정치연합으로 하여금 보통사람의 열망을 대변하고,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는 혁신의 동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중성을 갖춘 유력 대선주자들의 정치연합이다.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혁신연대를 이루는 것이다. 3자 연대로 낡은 인물들을 솎아내고 당을 신선한 정당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다른 하나는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궐기다. 수원·고양·성남·부천 등 인구 100만 안팎의 도시에서 재선에 성공한 기초자치단체장들은 국회의원들의 정치독점과 계파정치의 폐해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중 상당수는 조직을 결성해 혁신운동을 전개하려 한다.

기초자치단체장들의 혁신운동은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이다. 하지만 이는 여의도 밖에서, 그것도 삶의 현장을 누비는 기초행정의 책임자들이 낡은 정치에 도전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들의 혁신운동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기초단체장의 대표를 최고위원에 당선시키려 한 시도의 연장선상이다. 진보정치의 성패는 보통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의제화·이슈화하고, 그들을 정치적 지지로 묶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기초단체장들의 궐기는 새정치연합을 제대로 된 진보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권력정치가 아니라 기초단체장들의 민생정치는 그 자체로서 새정치연합을 새롭게 만드는 힘찬 동력이 될 수 있다.

기초단체장들 중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염태영 수원시장은 민생정치의 상징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로 낡은 정치의 밑동을 허물고 있다. 조용한 염 시장이나 우렁찬 이 시장이나 지향하는 바는 같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을 챙기는 진보정치다.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유능한 행정가를 넘어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하는 민생정치, 즉 먹고사는 문제를 능숙하게 풀어내는 정치의 실례다. 이들의 도전이 새정치연합을 ‘지는 정당’으로 전락하게 하는 기득권의 앙시앵 레짐을 혁파하고, 진보의 새 시대를 여는 추동력이 되면 좋겠다. 분투를 기대한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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