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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에는 세 가지가 없다. 새정치도 없고, 민주도 없고, 연합도 없다. 새정치란 낡은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한편 무엇보다 보통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 의제로 삼는 정치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런 새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민주도 없다. 정당에서 ‘민’은 당원이고 지지자다. 그런데 중요한 대목마다 다수를 이루는 이들은 소외되고 있는 반면 소수의 국회의원들만이 ‘주’로서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다. 이건 명백히 반민주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러 정치세력의 연합체다. 가까운 과거만을 반추하더라도, 2011년에 박원순이, 2014년엔 안철수가 합류했다. 박원순으로 상징되는 시민운동 세력과 안철수로 상징되는 제3세력이 합쳐져서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당명에 빗대자면 새정치세력과 민주세력 간의 연합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 전에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안철수 세력과의 1 대 1 통합으로 구원받고선 작년 7·30 재·보궐선거 패배로 안철수 의원이 대표직에서 물러나자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공당으로선 무책임한 행위다. 그러니 새정치민주연합에 연합이 없다고 할 수밖에.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세 후보가 있다. 대권후보로서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박원순 시장을 일컫는 말이다. 진보진영에는 이상한 낙관주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2017년 대선 필승론이다. 보수정권 10년이라 바뀔 때가 됐고, 새누리당의 후보군이 마이너리그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메이저리그라는 게 그 이유다. 여론조사를 보면, 야권 후보들이 여권 후보들에 비해 강세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야권 후보들의 우위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핵심 지지층의 투표율 격차나, 지역기반의 덩치 차이 등을 감안하면 여론조사에서의 미세한 우세는 그야말로 허망한 착시다.

부동의 1위,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던 안철수 의원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때의 추억이 됐다. 지방선거 후 대안으로 부상하던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도 푹 꺾여 이제는 그저 그런 수준이다.

안철수-박원순에 이어 다시 문재인 대표가 부상했지만 4·29 보궐선거 완패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인천 서구·강화을을 제외하고 야권의 텃밭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그것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절대 호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맥없이 졌다. 지지율 하락보다 이처럼 당 대표로서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게 더 뼈아픈 대목이다. 안철수-박원순-문재인이 차례로 무너진 탓에 문·안·박의 동반 강세는 옛말이고 동반 하락이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칫 동반 하락이 동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 대표의 리더십 약화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면 안 그래도 총선 공천 때문에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당내 계파주의가 극성을 부릴 것이다. 자칫 문 대표가 식물대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공천 물갈이 없이 예의 그 식상한 인물들이 정권심판론·야권연대에 기대는 낡은 정치가 다시 득세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총선 패배다. 다른 길도 있다. 문·안·박이 연대해 혁신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사람도 바꾸고, 정책도 손질하고, 행태도 일신해야 한다.

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셋이 동맹을 맺어 혁신을 도모한다면 당내 전선은 계파 대결이 아니라 수구 대 혁신의 대결이 된다. 이렇게 해서 총선에서 승리하면 문·안·박의 대선 경쟁력은 동반 상승하게 될 것이다. 동반 몰락은 셋 중 누구라도 패배하는 길이라면 동반 상승은 누가 됐든 이기는 길이다.

동반 몰락이냐 상승이냐의 키는 일단 문재인 대표에게 주어져 있다. 그가 계파주의에 안주해 기존 질서를 온존하고, 그 속에서 ‘안전하게’ 대선후보가 되고자 하면 그는 ‘무난하게’ 패배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열린 5.1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반대로 총선 승리를 위해 당내 기존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안철수·박원순과 손잡고 당을 혁신해 당원·지지자들의 열의를 끌어낸다면 총선 후 경쟁은 치열해지겠지만 대선 승리는 더 확실해진다. 새정치, 민주, 연합 등 이 3가지를 복원하는 것이 4·29 보궐선거 패배에 가장 확실하게 책임지는 것이다.

안철수·박원순도 나 몰라라 해선 안 된다. 문 대표의 몰락이 곧 자신들의 기회는 아니다. 동반 몰락으로 이어질 뿐이다. 대선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 목표라면 지금은 문·안·박 혁신연대로 총선 승리를 이뤄내야 한다. 경쟁은 그 다음 일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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