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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치부패다. 차떼기다 뭐다 해서 그만큼의 홍역과 대가를 치르고도 아직 정치부패는 남아 있는 모양이다. 성완종 게이트든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든 이번 사태는 누가 얼마나, 왜 돈을 받았는지에 대한 규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야 간의 정치적 유불리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성역 없이 파헤쳐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 하지만 강력한 사후처벌만으로는 부패를 막기 어렵다. 효과적인 사전 제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엄정한 수사와 단호한 처벌만을 요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부패는 우리 정치에서 계속 반복되는가?

“정치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한다.” 베버의 이 말대로 정치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다룰 수밖에 없다. 권력을 다루다 보니 그 권력을 활용해 부당한 이익을 쉽고 편하게 얻고자 하는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에 유혹당하기 쉽다. 유혹에 안 넘어가야 하지만 권력을 가진 터에 유혹이 있으면 부패할 가능성은 늘 있기 마련이다. 견물생심 아니던가. 정치인이 부패하지 않도록 사전에 제어하려면 몇 가지가 중요하다. 먼저 검찰·경찰과 법원 등 사정권력의 정상화가 필수적이다. 차별과 부패는 공생관계다. 사정권력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즉 권력이 있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게 확실하면 정치부패는 줄어들 것이다.

정치부패는 불공정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권력자와의 인연에 따라 경쟁의 결과가 달라진다면 누구라도 부패할 인센티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력이 아니라 연고에 따라 경쟁의 성패가 달라지면 실력을 키우기보다 연고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건 당연하다. 강자가 곧 승자가 되는 강자독점, 승자가 혼자 다 먹는 승자독식은 부패의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경쟁의 대가가 패자에겐 너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공정성도 높여야 하고, 나아가 경쟁을 완화하는 한편 경쟁의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대가의 격차도 낮춰야 한다.

검찰 관계자가 17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 사건과 관련한 자료들을 분석하고 있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_ 연합뉴스


정치부패가 줄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치구조다. 우리 정치는 일반 선거보다는 당내 공천 중심이다. 일반 선거에선 유권자가 서로 다른 정당의 후보들을 놓고 선택권을 행사한다. 당내 공천은 지도부나 실세가 선택권을 행사한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의식하게 만드는 정치구조라면 그들은 열심히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하지만 정치인이 당내 권력자를 의식해야 하면 그의 구미를 맞추는 데 혈안이 된다. 패거리가 만들어지고, 계파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라면 공천도 일종의 지대에 다름 아니다. 지대를 둘러싼 먹이사슬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정경유착이다.

인물 중심의 정치나 선거를 조장하는 제도도 문제다. 정치의 주체가 정당이 될 수도 있고,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선거제도로 보면, 비례대표제는 정당 중심의 정치와 선거를 조장한다. 단순다수제, 특히 이른바 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는 인물 중심 정치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그런데 인물 중심의 정치는 비용이 많이 든다. 믿을 건 자신뿐이고, 결국 각자도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 중심의 정치가 극성을 부리는 미국에서 선거자금은 천문학적 규모다. 작년 중간선거에서 풀린 선거자금이 무려 40억달러(4조3000억원)다. 결국 인물 중심의 정치는 부패와 친화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치부패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부패의 양과 질을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는 있다. 부패는 무능의 다른 표현이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삶을 살피는 데 정치 에너지를 집중하게 하고, 그들 간의 경쟁을 치열하게 만드는 게 답이다. 정치부패를 개인의 심성이나 도덕적 의지에 맡겨놓지 말고 부패를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위를 쳐다보는 공천경쟁이 아니라 밑을 우러러보는 민심경쟁을 펼치도록 하면 부패는 줄어든다. 정치인이 권력의 마성에 정신을 잃지 않도록 제도로써 방벽을 쌓아야 한다. 다시 베버의 통찰이다. “비록 정치에 있어서 권력은 불가피한 수단이고 권력에 대한 야심은 모든 정치행위를 추동하는 힘 가운데 하나지만,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벼락부자처럼 자신의 권력에 대해 허풍을 떨거나 권력감에 도취되어 허영에 참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것보다 정치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게 하는 해로운 일은 없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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