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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소임은 갈등의 사회화에 있다. 사회화는 숱하게 많은 부분 갈등을 한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제기하는 한편 그것을 개인적 부담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갈등, 또는 균열을 사회화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격과 질, 힘의 관계 등이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누가 권력을 잡는지도 여기에 달려 있다. 어떤 갈등을 사회화해서 국가 의제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정치세력의 실력을 가늠하는 첫번째 지표다.

등장한 갈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정치적 성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보느냐, 행정 실패로 보느냐에 따라 그 파장은 사뭇 다르다. 이렇듯 하나의 갈등을 어떻게 정의(define)하는지는 정치세력 간의 경쟁이나 선거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갈등을 대체(substitute)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 정치세력이 A 갈등을 의제화하려고 하면 다른 정치세력은 B 갈등을 의제화할 수도 있다. 어떤 갈등을 의제화할 것인지를 두고 정치세력 간에는 치열한 다툼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사실 선택된 갈등이 곧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안보(천안함)를, 새정치민주연합은 복지(무상급식)를 의제화하려고 경쟁한 것이 좋은 예다.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지지층에게 필요한 갈등을 의제화시켜내는 것이 정치세력의 일차적 과제라면 문재인 대표의 ‘유능한 경제정당론’은 적절한 선택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라면 사회경제적 아젠다를 부각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계층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정치를 바라보고 선거에 참여하는 게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택된 의제들이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틀, 갈등구조, 아젠다 세팅을 프레임으로 부를 수 있다. 문 대표는 사회경제적 프레임을 선택했다. 성공할까?

일차적 관문은 4·29 재·보궐선거다. 이번 선거에서 문 대표는 3가지를 버렸다. 전략공천, 정권심판론, 야권연대가 그것이다. 그간 야당이라면 으레 들고 나온 전가의 보도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만약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당연히 이 3가지를 포기한 걸 두고 강한 반론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다음 총선 전략과 관련해 논쟁과 토론이 분분하게 일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의제화와 이슈화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치적 경쟁이나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안이한 판단이다.

의제화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갈등을 부각시키는 것이라면 이슈화는 그것을 중심으로 정치적 경쟁이 펼쳐지거나 대중적 호오(好惡)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대선을 상기해 보면,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새정치연합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초반에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기존의 태도를 바꿔 복지와 경제민주화 의제를 수용해버리자 이 의제는 선거의 쟁점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의제화에는 성공했으나 이슈화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의제화는 어떤 갈등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고, 이슈화는 갈등 해법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정치나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이슈화다. 간혹 의제화만으로 승리하기도 하지만 결정적 요인은 이슈화 여부다.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 토론하는 새누리당 (출처 : 경향DB)


정치세력의 실력도 이슈화에서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문 대표는 이제 겨우 경제를 부각시키는 의제화에 성공했다. 성패는 이슈화 여부에 있다. 경제를 두고 새정치연합이 여당과 다른 차별화된 해법을 손에 잡히게 보여줘야 한다. 쉽고 간명한 쟁점으로 양자의 차이를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좋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지층의 동원 및 확충에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반론도 강해지게 된다. 그들에게는 샤츠슈나이더의 이 충고가 답이다. “모든 패배한 정당·대의·이익은 기존의 노선을 따라 계속 싸움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낡은 싸움을 포기하고 새로운 연합을 형성하고자 노력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여기서 가장 우려스러운 사태는 기존의 싸움을 계속하려는 완고한 소수파들이 어리석게도 낡은 갈등구조를 동결시켜 영원히 고립된 소수파로 남게 되는 경우이다.” 문 대표는 의제화를 넘어 이슈화로 승리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게 이기는 정치, 해내는 리더십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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