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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참사는 4월16일 여객선 하나가 바다로 침몰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건은 더욱 확대되어서 총체적인 국가에 대한 문제제기로 번지는 양상이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목할 수 있는 것은 ‘공동선’(common good)에 기초했다고 믿었던 국가가 재난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나 선정적인 보도에 따른 심리적 외상은 이런 망연자실한 심정을 구성하는 다른 축이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반어적 의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믿었던 ‘공동선’에 대한 합의가 붕괴했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가치가 속절없이 캄캄한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그 가치라는 것은 선진국이나 정상국가로 표현되었던 국가의 중립성이었다. 여기에서 중립성이라는 것은 신분의 높낮이나 경제적 유불리를 떠나서 위급시에 어떤 ‘국민’이라도 공정하게 대하는 정의로운 국가를 의미했다.

보수정권이 국민안전보다 국가안보를 내세울 때도 ‘국민’을 위해 그렇게 정책을 수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보수정권에 반대하는 입장일지라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을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 자체를 폐기하진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전제들을 몽땅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재앙이라고 볼 수 있다.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다 함께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이 이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1항의 문구가 무색하게 국가는 위험에 빠진 ‘국민’을 구하지도, 피해를 입은 ‘국민’을 위로하지도 않았다.

이 참사를 처음부터 지켜본 대다수는 지금 불법을 자행한 청해진해운이나 맨 먼저 탈출한 선장보다도 해경과 정부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경과 정부는 구조자나 실종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과연 이들이 개인적으로 태만하거나 무능해서 그런 것일까. 비리나 부패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면 이들의 대응은 사익을 위해 공익을 저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도 나름대로 전문가들이고, 한국에서 해상안전과 관련해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이들이다. 그런데도 이런 개개인의 역량은 이번 참사에서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조직 보위를 위해 정확한 구조자 수를 은폐하는 식으로 정보를 조작하기에 바빴다.


청해진해운의 불법행위 못지않게 이 문제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간 역대 정부가 주장했던 ‘위기관리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차차 밝혀내야겠지만, 거창하게 “해상구조 체계의 선진화”를 내세우며 수난구호법까지 개정해 설립한 한국해양구조협회가 해경의 늑장대응을 야기한 원인이라는 의구심마저 자아내게 만들 지경이다. 해경과 민간기업의 유착관계는 차치하더라도 이 협회 자체가 탁상공론의 산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쭉 살펴보면,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경비 문제이다. 수난구호법을 개정한 취지도 그렇고, 해경이 언딘마린인더스트리라는 기업과 연계해서 구조작업을 펼친 전후 사정도 그렇고, 하나의 전제가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바로 ‘작은 정부’라는 환상이다. 시장을 모든 가치의 기준으로 신봉하는 경제주의 이데올로기가 정부 예산을 줄이고 그 자리에 민간기업을 들여놓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해경이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구조장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초기 수색에 소요될 경비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이상한 해경의 행동을 설명해준다.

‘작은 정부’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노태우 정부 때였다. 그동안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이런 정책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번 참사가 일러주는 하나의 교훈이 이것이다. 국민안전은 경비로 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차후에 효율성을 빙자해서 민간에 맡겨 방치할 것이 아니라 국가 재원을 확보해서 전문장비와 요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정부’에 대한 환상을 ‘공동선’이라고 착각하면서 민영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흔들어온 이들도 이번 참사에 일정하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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