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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구경한 가을 운동회 학부모 춤판은 볼만했어. 단풍이 든 교정 귀퉁이에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같이 술을 자시고 급기야 춤판을 펼치셨는데, 기진맥진한 아부지들을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모셔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버스 여행을 떠난 동네 아짐들의 춤바람도 재미있었지. 방뎅이를 사정없이 휘젓는 버스춤은 쿠바의 살사나 아르헨티나의 탱고 거시기와 맞먹는 수준급 ‘토종 무용’이렷다. 읍내 동네에선 춤바람이 나설랑 가정을 버리고 순회공연(?)을 다니는 엄마 아빠가 한두 명쯤 꼭 있었다. 그래도 화투 놀음에 빠져 집을 버린 것보단 나은 케이스.

“새빨간 드레스 걸쳐 입고 넘치는 그라스에 눈물지며 비 내리는 밤도 눈 내리는 밤도 춤추는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 별빛도 달빛도 잠든 밤에 외로이 들 창가에 기대서서 슬픈 추억 속에 남모르게 우는 애달픈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원곡은 ‘땐사의 순정’, 가수 박신자씨가 불렀는데, 가수 주현미씨의 큰어머니로 스물세 살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단다. 가사가 퇴폐적이라며 1차 금지곡. 훗날 김추자씨가 리메이크해서 불렀는데, 가사가 방송 부적격으로 2차 금지곡 지정. 가수도 가수지만 노래가 고생이 참 많았다.

길에 핀 빨간 코스모스가 살근거리며 춤추는 계절이야. 가을볕이 좋아 실없이 웃는 사람도 많구나. 축구선수는 킥킥킥 웃고, 악마는 헬헬헬, 아이들은 키드 키드, 요리사는 쿡쿡쿡, 사내아이는 걸걸걸, 살인마는 킬킬킬, 도둑은 키키키, 수사반장은 후후후 웃는다던가. 범인은 누구인가, 후(who)~. 가수들은 싱긋싱긋 생긋생긋, 싱싱싱 노래하며 웃겠다. 동네에 색소폰을 배우는 사람이 있나 가끔 계곡이 쩌렁쩌렁 울려. ‘마이 웨이’ 뭐 이런 곡을 엉터리로 연주. 울어라 색소폰아~. 색소폰은 그만 울고, 이제 웃었으면 좋겠다. 스물세 살에 안타깝게 죽은 이들도 하늘나라에선 새빨간 드레스로 춤추며 ‘비 내리는 밤도 눈 내리는 밤도’ 부디 웃었으면 좋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연재 | 임의진의 시골편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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