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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다 합쳐서 두세 시간쯤 될까? 내가 이번 대통령 후보 토론회 및 선거 관련 TV 뉴스를 보는 데 쓴 시간이. 이것을 말하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최서윤씨는 정치에 관심 많은 줄 알았는데….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나?”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었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봤다는 표정이었고 ‘민주시민’의 책무를 방기하는 자를 검거했다고 선언하는 음색이었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내가 사는 원룸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토론회와 TV 보도를 챙겨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열의가 있다면 소셜미디어를 통한 생중계나 다시보기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나 역시 시도한 바다. 그렇게 힘겹게 챙겨본 것은 각자 ‘캐릭터’ 분석을 끝낸 뒤 역할에 몰입해 연기하는 연극과도 같았다. 지금의 한국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논증보다는 비방의 음색과 단정적 표현이 난무하는.

누가 더 북한을 감칠나게 욕하나 대결하고, 그것에 동참하지 않으면 ‘종북’이라 딱지 붙이는 시대착오적인 분위기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흙수저’가 노력이 부족한 이들이라 인식하고, ‘귀족노조’ 타령하며, 여성 후보를 가리키며 ‘말로는 못 당하겠다’고 이죽거리고, 동성애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막말을 기어코 보태는(‘자기를 찍으면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면서 성소수자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자유는 짓밟아도 되는가?) 특정 후보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2016년 최고의 폭력영화 <아수라>가 그려낸 폭력신보다 수위 높은 신체훼손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피폐해진 심신을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TV토론회를 보지 않아도 될 또 다른 이유는 일찍이 선택지를 대폭 좁혀뒀기 때문이다. 촛불정국 때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권 창출을 도왔거나 그와 같은 정당에 속했던 이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낡은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세력, 원내에 의석을 가지지 못한 당 소속 후보들도 제하고 나니 펴져있는 손가락은 두 개였다.

둘 중 한 명이 당선된다고 내가 사는 이 땅이 일순간 ‘헤븐조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특정 인물에 과한 기대를 걸고 크게 실망하는 일을 경계한다. 내가 좀 더 관심 있는 ‘정치’는 스스로의 삶을 증언하고, 동료 시민들과 평등한 토론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학습하며, 변화에 대해 제언하고 요구하는 일이다. 타인의 존재를 함부로 규정하고 배격하는 이들이 주류인 사회에서는 나 역시 몰이해에 기반을 둔 폭력적인 대상화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TV토론 열심히 보지 않는다고 ‘우민’ 취급했던 그 남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남을 깔아뭉개면 자신의 지위와 가치가 높아진다는 인식이 만연하다면 착취와 갑질은 정당화될 것이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소중하게 일궈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라면 나는 이 땅에서 평생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할 것이다. 일상의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TV토론과 대선 관련 보도의 홍수는 시민을 정치적 주체로 행동하게 돕기보다 ‘유권자’의 틀에 갇히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가십뉴스처럼 누가 어떤 스케줄을 소화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스포츠 토토’ 정보라도 제공하듯 승률을 분석하는 것. 유권자들로 하여금 그놈의 ‘정치공학’에 매몰되게 하고, 피아를 가르는 놀음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막말이 의견이랍시고 지상파를 통해 널리 전파되는 것은 사회에 크게 해악을 끼치는 일인데, 그렇게 혐오의 언어로 활개친 이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 역시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나는 집으로 우송된 정책집, 시민단체와 언론사의 정책 요약 기사 및 분석 칼럼만으로도 투표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더 이상 이번 대선과 관련한 TV토론은 없다. 이제는 시민들끼리 지금의 정치구조와 관련해 일상에서 토론할 차례 아닐까? 나는 대선 결선투표제와 총선에서의 100% 비례대표제에 대한 토론이 시급하다고 느낀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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