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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직권남용 등 12개 혐의), 한병도 정무수석(선거개입), 전병헌 정무수석(뇌물), 신미숙 인사비서관(환경부 블랙리스트), 송인배 정무비서관(불법정치자금), 백원우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감찰 무마와 선거개입), 최강욱 공직비서관(허위 인턴증명서, 선거법 위반), 윤건영 상황실장(회계부정) 등등.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었다. 일찍이 이런 청와대가 또 있었던가.

수사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이 목록에 비서실장 이름까지 실릴 뻔했다. 최근에는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경제수석실 행정관, 민정비서실 행정관, 민정비서실 수사관이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해 검찰에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한다. 그 밑에서 일하던 전직 행정관 2명의 휴대전화도 압수된 모양이다.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를 향하자 윤건영 의원이 느닷없이 “경고”를 하고 나섰다. “월성 1호기 폐쇄는 19대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가 공약을 지키는 너무나 당연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감사원과 수사기관이 위협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체 국민 중 41%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고, 그 41%도 그의 모든 공약에 동의한 건 아닐 게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탈원전 사업에 찬성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찬성의 범위 안에 그 사업을 수행하는 방식의 불법성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올바른 정책이라도 그것을 수행할 때 적법한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지금 검찰과 수사기관에서 어디 정책 자체를 문제 삼던가. 그저 그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의 불법성을 따질 뿐이다. 그런데 윤 의원은 이 차이를 교묘히 지우고 있다.

조국·한병도·전병헌·신미숙
송인배·백원우·최강욱·윤건영…
청와대 인사들 줄줄이 비리 연루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월성 1호기
관련해 또 다른 이름도 오르내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
대통령 심기 경호가 이 정권의 작풍

그의 주제넘은 발언은 이 정권 사람들의 ‘작풍(作風)’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앞에 열거한 청와대 인사들이 저지른 비리는 크게 ‘권력형’과 ‘개인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단순한 개인 비리에 가깝다. 반면 유재수 비리 감찰 무마, 울산시장 선거개입, 환경부 블랙리스트나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은 청와대의 ‘작풍’, 다시 말해 권력의 행사 방식에서 비롯된 권력형 비리라 할 수 있다.

이 해괴한 작풍의 바탕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윤 의원은 당선된 대통령의 공약이니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의 불법성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사업의 목적이 정당하니 절차의 적법성은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에는 정책 실행의 과정과 연관된 절차의 정당성 또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여당의 최고위원인 신동근 의원은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불편하고 또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감사원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결국 감사의 결과를 자기들이 설정한 숭고한(?) 대의에 뜯어 맞추라는 요구다. 그런 이들이니 원전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는 일쯤은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게다.

청와대 작풍의 또 다른 요소는 ‘대통령 심기 경호’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VIP를 위한 ‘손타쿠’ 사건에 가깝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도 대통령이 벌인 현장 이벤트의 뒤치다꺼리를 하려다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되었다. 수십년에 걸쳐서 해야 할 탈원전을 대통령 심기에 맞춰 무리하게 서두르다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떳떳한 사업이라면 떳떳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합법적 방식으로 수행될 수 없는 사업이라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윤건영 의원의 “경고”는 결국 ‘청와대는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 그 경고가 먹힌다면, 진짜 범인들은 다 빠져나가고 밤에 몰래 444개의 자료를 삭제해야 했던 말단 공무원들이 그 책임을 뒤집어쓸 것이다. 그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나, 왠지 그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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