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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수처는 누가 견제하느냐?’는 멍청한 질문을 보수야당, 언론, 논객이 유포한다. 공수처에 대한 비리는 당연히 검찰이 수사한다. 검찰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공수처를 감시할 것이다. 물론 공수처는 눈을 부릅뜨고 검찰을 들여다볼 것이다. 공수처 발족 후 공수처와 검찰 간의 긴장, 팽팽할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이 SNS에 올린 글이다.

어이가 없다. 검찰이 가졌다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그대로 공수처로 옮겨놓고 기껏 하는 얘기가 ‘공수처의 비리는 검찰에서 수사’할 테니 괜찮단다. ‘권한’의 문제를 슬쩍 ‘비리’의 문제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이인규에게 어떤 비리가 있었으며,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하던 검사들에게는 무슨 비리가 있었던가?

‘가장 지독한 나치는 성실한 나치’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는 뇌물을 받고 유태인들을 빼돌리는 부패한 나치 장교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비리가 없다고 강제수용소가 사라지는가? 그들이 청렴했다면 외려 더 많은 유태인들이 희생됐을 것이다. 문제는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국가기관의 부당한 ‘권한’ 아닌가.

그런데도 조 전 장관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법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아니라 지지자를 관리하는 ‘정치인’으로서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덧붙여 “공수처와 검찰 간의 긴장이 팽팽할 것”이라고 말한다. 천진난만한 얘기다. 권력은 마음에 안 드는 공수처장은 검찰로 베고,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은 공수처로 벨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 검찰이 견제한다”는 조국
법학교수 아닌 정치인 발언 불과
국민 과반 “검찰개혁 실패” 판정
중립성 보장 장치 없앤 공수처는
권력비리수사 뭉개는 장소 될 것
무소불위 대통령 권력은 놔둔 채
칼 한 자루 더 쥐여주면 뭐하나

국민의 55%가 검찰개혁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났다고 답변했다. 취지에 맞게 진행된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사가 11월30일~12월2일 전국 18세 이상 1004명 대상으로 여론조사). 한마디로 국민은 검찰개혁이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왜 이 꼴이 됐을까? 간단하다.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은 오직 ‘제왕적 대통령’뿐. 청와대 권력에 괄호를 치고 하는 개혁은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수처는 앞으로 두 가지 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는 권력비리 수사를 무마하는 것. ‘사건 먹는 하마’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후배에게 ‘너도 검사냐’ 소리를 들은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 ‘조국 부부가 무죄’라 주장했던 정한중 교수를 생각해 보라. 공수처의 행보는 이들 추미애 사단의 행태 속에 이미 예견돼 있다.

공수처의 중립성을 보장한다던 야당의 비토권을 박탈했다. 수사처 검사의 자격요건도 대폭 완화했다. 한마디로 ‘민주화운동’을 한다는 가당치도 않은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 어용인사들로 공수처를 구성하겠다는 얘기. 그러니 공수처는 앞으로 권력형 비리 사건들을 소리 소문 없이 묻어버리는 암매장 장소가 될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판검사들에 대한 수사뿐이다. 지금 민주당이 하는 일을 보라.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고 아예 특정 판사의 이름을 따서 ‘방지법’을 만든다. 법정에서 자기한테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법관탄핵’ 운운하는 이도 있다. 이 발언을 한 이수진 의원은 벌써부터 “공수처 다음은 법원개혁”이라고 벼른다.

판검사들이 비리만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고? 한동훈 검사장은 어디 죄가 있어서 수사대상이 됐던가. 그는 사기꾼과 최강욱이 거짓으로 뒤집어씌운 혐의 때문에 부하 검사에게 독직폭행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라. 산 권력에 칼 좀 댔다고 당·정·청이 들러붙어 그에게 없는 죄를 날조해 뒤집어씌우고 있지 않는가.

검찰이 ‘개혁에 저항’을 한단다. 대체 무슨 저항을 했다는 걸까? 제도개혁은 어차피 입법부의 소관이고, 검찰 인사권은 총장 패싱하고 법무부 장관이 혼자 행사했다. 검찰에선 여러 차례 청와대에 자체 개혁안을 냈다. 그런데도 검찰이 개혁의 적으로 몰린 것은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인사들의 비리에 칼을 댔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력이다. 검찰이든 공수처든 거기에 무소불위의 힘을 싣는 것은 권력이다. 문제의 근원에 눈을 감은 개혁이 성공할 리 없다. 그래서 고작 원한과 복수, 비리은폐의 수단으로 악용되다 결국 대통령 퇴임 후 보장보험으로 전락한 것이다.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대통령 손에 칼 한 자루 더 쥐여주며 철저히 실패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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