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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발언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가 되자 그는 언론이 자기 발언의 취지를 왜곡했다고 해명했다. 원래는 저 문장 앞에 “토착왜구”라는 주어가 붙어 있는데, 보수언론에서 이를 빼고 마치 자신이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모두 친일파가 된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언어학은 크게 세 분야로 이루어진다. 통사론·의미론·화용론이 그것이다. 이는 각각 언어의 세 요소, 즉 문법·어휘·맥락의 세 요소에 조응한다. 예를 들어 통사론은 낱말과 낱말을 결합하는 규칙을, 의미론은 각각의 낱말들이 가진 표준적 의미를, 그리고 화용론은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문장의 용도를 탐구한다. 이제 언어의 이 세 측면에 따라서 문제의 발언을 분석해 보자.

먼저 ‘통사론’의 측면에서 원문은 문법에 안 맞는 비문(非文)이다. “토착왜구라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조정래 선생은 ‘토착왜구’가 이 문장의 ‘주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표현은 주어가 될 수 있는 문법적 형식을 띠고 있지 않다. 주어가 되려면 그 뒤로 체언이 붙어야 한다. 즉 ‘토착왜구라 부르는 사람들’이라면 그 문장의 주어가 될 수 있을 게다.

조정래 선생의 ‘친일파’ 발언에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친일파’의 기준이 무엇일까
종전 67년이 되었어도
아직도 토벌대와 빨치산이 돼
지리산 자락을 헤매는
영혼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경우 ‘의미론’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토착왜구라 부르는 사람들은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토착왜구가 이미 친일파인데, 일본에 갔다 와서 다시 친일파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원래 친일파인 사람들이 현해탄을 건너면서 갑자기 애국자로 돌변했다가 다시 일본에서 변절해 친일파가 되어 돌아왔다? 이는 매우 부조리하게 들린다.

그러므로 ‘토착왜구라 부르는’이라는 표현은 뒤에 나오는 ‘친일파’를 수식하는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일본에 갔다 오면 무조건 다 토착왜구라 부르는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이 문장은 통사론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나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따라서 “제대로 국어 공부한 사람은 다 알아듣는 이야기”라는 그의 주장과 달리, “제대로 국어 공부한 사람”은 그의 해명이 억지라고 느낄 것이다.

그는 조중동이 왜곡보도를 했다고 주장하나, 나라에서 운영하는 연합뉴스도 당시 그렇게 보도를 했고 수많은 매체가 이를 그대로 받아 게재했다. 대부분의 한국어 사용자는 그의 발언을 ‘실언’으로 여겼다는 얘기다. 물론 조정래 선생이 일본 유학만 다녀오면 누구나 친일파가 된다고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리라. 아마도 격앙된 상태에서 발언하다가 실수로 과도한 일반화를 하게 된 것이리라.

화용론의 측면에서 ‘토착왜구’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사용을 갖는다. 즉 그것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싸잡아 반민족분자로 낙인찍는 데에 사용된다. 그는 문제의 발언이 일본유학생 전체를 가리킨 게 아니라, <반일종족주의>의 저자들만을 가리킨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토착왜구’라는 표현의 사용이나, “150만, 60만 하는 친일파들을 전부 단죄해야 한다”는 발언은 그 해명을 무색하게 한다.

핵심은 일본유학생 전체를 싸잡아 모독했느냐 여부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일 뿐이고, 문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무서운 생각’이다. 이영훈 교수와 같은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 역시 학문적으로 반박할 일이지 법적으로 처벌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조정래 선생은 무려 “150만, 60만”의 동료 시민을 단죄의 대상으로 꼽았다.

대체 150만, 60만이 거기에 속한다는 그 ‘친일파’의 기준이 무엇일까? 아마도 과거에 극우파들이 100만에 달한다고 하던 남한 내 ‘간첩’의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국가반역자를 처단한다는 발상이나 민족반역자를 단죄한다는 발상이나 어차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이념의 광기. 종전 67년이 되었어도 아직도 토벌대와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 자락을 헤매는 영혼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이게 한 문인의 개인적 망상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에는 이른바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가니 민족보안법이 올 모양이다. 꼭 이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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